오전 4시에 떠나기로 한 일정을 앞당겨 송년 예배가 끝나자 버지니아 비치로 출발하기를 잘했다. 매섭게 추운 날씨는 작은 승합버스 안에서 추위에 떠는 젊은이들을 쉽게 잠들게 했다. 64번 국도는 텅텅 비어있고 짙은 어둠속을 지나가는 몇 대의 차들이 간간이 불빛을 남기고 사라졌다.
생각지도 않던 해맞이를 나선 마음은 미묘하기가 그지없다. 미쳤나, 이런
추위에 2시간이나 달려가야 하는 거리에다, 해가 떠오르는 그 짧은 몇 분 때문이라면 집에 가서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좋은 책과 명화와 음악으로 찬찬이 새날을 맞이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래도 어딘지 신선하고 묘미가 있을 것 같기에 금세 젊은이들을 따라 나섰다. 빼앗다시피 한 친지들의 오버코트와 오리털 재킷 속에서 따뜻함이 와서 깜빡 눈을 감는다. 어느새 바다의 출렁이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니 환한 외등들이 바다 가운데 선 채로 다리를 열고 크고 넓은 바다는 얼굴을 내민다. 고향처럼 느껴지는 바다가 있다. 다 보이지는 않지만. 얼마나 오랜만인가.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물새가 퍼덕이며 나는 소리를 낸다. 반갑다. 잠들었던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그렇게 오랜 동안 반듯한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을 시간에 맞추어 오고가고, 좋고 싫은 사람들 속에서 어깨를 부벼대며 허덕여서 왔던, 그리고 지났던 세월들이 구겨진 채로 마음속에 접혀져 있는데 바다의 물결이 차갑지만 조금씩 와 닿는다. 풀어주기라도 할건가. 몸이 떨린다.
청년들도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고 길고긴 체사픽 다리를 보고 경탄한다. 그렇지. 젊은이들은 저 다리를 꼭 건너고 싶을 것이다. 잠깐 낚시터에서 라면을 끓였다. 좀처럼 물은 끓지를 않는다. 해변의 도시는 동쪽을 가리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바다 앞으로 가자.
어두움 속에서도 높고 긴 행렬의 나무숲을 지났다. 분명 저 건너 바다 속에 해가 있다. 물새들도 젊은이들처럼 짙은 어두움의 바다를 향해 줄줄이 서있다. 바로 앞으로 은색의 물결이 차근차근 발끝에 와 닿는다. 시간을 재는 것일까. 전체의 삶이 이렇게 초를 재는 것이라면 진작부터 잘했을 것 아닌가. 얼굴을 스치는 쌩쌩한 바람이 마음에 스며오는 찬바람에 비할 수 없다. 불어라 쎈 바람아, 혹 해가 뜨기만 해봐라, 사라지지 않겠냐. 어서 해야 떠라. 얼마 전 고향을 다녀온 주는 분명 부모님을, 연수차 온 현은 친구를 떠오르는 해 속에서 만나야 하는 것이다. 해가 뜨면 저 모래알 하나하나마다 내리는 빛 속에 반짝이게 할 소원을 기다리고 있지 않냐. 보라, 부스스 웃는 미소처럼 검은 바다의 양 볼에 여명이 져온다.
7시10분. 강렬한 불덩이가 된 해가 억누르던 암흑을 뚫고 솟는다. 바로 희망이다. 우리 모두를 참담케 했던 아픔을, 태안에 밀려든 고통의 기름덩이를 말끔히 씻어줄. 희망의 해는 눈부시다. 사랑의 미사일처럼 쏜살같이 먼 바다를 가로질러 우리의 가슴에 꽃힌다.
오는 길은 가벼운 마음이다. 어디서 딱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예약도 없이 휴일인 음식점에 막무가내로 아침을 청한다. 주인은 밝은 얼굴로 우리를 반긴다. 첫해 첫날의 무례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샐러드, 스시, 김치볶음밥, 그리고 뜨거운 커피를 내놓으신 따끈한 사랑을. 더구나 값을 거절하시고 오히려 청년들에게 봉사를 위해 헌금을 주시는. 새해맞이는 감격으로 한해를 젊은이들에게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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