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3일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개방식’을 하자 많은 시민들이 숭례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본사전송>
1800년대: 1800년대 구한말 당시 숭례문의 모습. <본사전송>
‘어떻게 이런 일이…’
한국의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방화범이 지른 불에 전소됐다는 소식에 남가주 한인사회도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된 다음날인 11일 LA 한인들은 가정과 사업장, 직장 등에서 온통 숭례문 화재에 대해 이야기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 많은 한인들이 마치 자기 일처럼 슬퍼하며 국보급 문화재가 어이없이 타버린데 대해 관리 부실을 성토했다.
1948년: 정부수립 직후 인 1948년 8월15일 숭례문 앞 거리의 모습.
<본사전송>
가든그로브에 사는 김정자(66)씨는 “친구가 아침에 전화를 해와 ‘남대문에 불났다’고 해서 처음엔 남대문 시장인 줄 알았다. 세상에 누가 진짜 남대문에 불이나 다 타버렸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해봤겠느냐”면서 흥분했다.
인랜드의 한숙희(61)씨는 TV를 보던 중 소식을 전해듣고 곁에 있던 아들과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먼 이국땅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기에 ‘한국의 자존심’ ‘서울의 상징물’이 하루 밤새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학생들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숭례문에서 찍은 기념사진 한 장 없다는 사실을 안타깝고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다. 제니 박(22)씨는 “파리 에펠탑이나 뉴욕 자유의 여신상에서는 한 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댔으면서 남대문에서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나 역시도 숭례문을 아끼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이날 미주한인 여성들이 회원으로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한국 방문당시 찍었던 남대문 사진’이나 ‘참혹한 숭례문’ 등의 관련 사진들이 속속 게시물로 올라왔으며, ‘숭례문 지못미’라는 말이 여러 게시판을 장식했다. 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의 줄임말로 유감스러운 일이 벌어졌을 때 네티즌들이 즐겨쓰는 단어다.
한 네티즌은 “선조들에게 부끄럽고 후손들에게 미안하다”며 “일제시대와 6.25도 견뎌온 600년의 역사가 한 순간에 사라지다니 수백년을 지켜온 자존심이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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