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국 공산치하에서 자유주의 세계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데는 한국일보의 역할이 컸습니다.”
미주 한국일보 후원으로 지난 1985년에 처음 미국공연에 나섰다는 한국화 씨는 미주 9개 주 공연을 통해 중국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 천당이라는 생각을 갖게됐다”고 회고했다.
한 씨는 그후 1988년 한국 88올림픽때 초청 받아 한국에서 공연을 갖고 이어 한국일보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으면서 자유세계로 진출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친정 집과 같다”는 한 씨는 그후 일본과 미국에 유학해 성악수업을 받은 후 한국에서 민주평통이 주최하는 행사에만 2000여 회 출연했다고 말했다.
“연변에서 한국화 하면 모르는 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는 한 씨는 “한국이 중국과 국교수립을 하고 중국을 알아가려는 시점에 한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당시 엄청난 출연료를 받으며 부를 쌓을 수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비즈니스도 하고 먹고 살만큼 재산도 있기 때문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뜻 있는 일을 하자해서 평통행사에만 줄곧 참여해 왔다”고 강조했다.
한 씨는 중국연변 사범대학 음악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중앙음대 성악학과를 수료했으며 중국 길림성 연변가무단 국가1급 예술가로 활동하다 1991년 대한민국에 귀화했다.
/안연용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