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와 라디오 서울에서 리포터로 활동한 바 있는 원진영씨가 남편과 의료봉사차 이디오피아에 머물며 보고 느낀 소감을 서신으로 보내 온 내용을 독자투고로 재구성 해 줄 것을 부탁해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지상 천국이라는 하와이에서 살다가 어느 날 아침 저주 받은 땅이라는 아프리카로 날아 온 나는 아직도 이 곳이 많이 낯설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이디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라는 곳이다. 공항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4년 전 한국의 한 교회가 설립한 종합병원 ‘MCM(Myungsung Christian Medical Center)’이 있다. 300 병상으로 이루어진 이 병원에서 남편이 현지인 환자를 돌보는 동안 나는 현지 꼬맹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힘들겠어요” 라고 말하지만 기실 그리 힘든 건 없다. 한달 30일에 맞게 쪼개어 쓸 생활비가 있나 꼬박꼬박 챙겨야 할 공과금이 있나, 휴대폰은 말할 것도 없고 전화도 인터넷도 거의 쓸 수가 없으니 애초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세 번 때 맞춰 구내 식당에 가서 주는 밥을 먹으면 되니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것 같이 소소한 일로 남편과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다.
문제는 하나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가슴 한 구석이 미어져 온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리 힘드냐 하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 길거리에 나가 노숙자들에게 빵을 나눠주는데 그 일이 만만치가 않다.
운 좋게도 대한민국이라는 비교적 안전하고 비교적 풍요로운 나라에서 태어난 덕에 주변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볼 수 없었던 나는 처음 대면한 낯선 풍경에 가슴이 아팠다기 보다는 머리를 울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와 남편을 포함한 봉사 단원 15여명은 한 달에 두 서번 승합차에 300개 정도의 빵 봉지를 들고 노숙자가 많은 다리 밑을 순회한다. 빵과 바나나 한 개를 담은 봉지 열 개를 손가락마다 하나씩 끼운 단원들이 차에서 내리면 순식간에 수백 명의 노숙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그 중에는 갓난 아이를 안은 엄마도 있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도 있고, 한 다리로 걷는 소년도 있다. 그들의 맑고 순수한 눈매가 빵 한 조각에 무섭도록 매서워진다. 준 사람에게 또 줄까봐 우리는 하나 주고 열심히 뛰고 하나 주고 또 열심히 뛴다.
잠깐 머뭇하면 금방 사람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아무데도 못 가게 되기 때문에 앞만 보고 죽어라 뛴다. 우리는 둘러싸이지 않기 위해 뛰고 그들은 그런 우리를 쫓아, 빵을 쫓아 뛴다.
머리가 헝클어지거나 옷이 찢기는 건 예사다. 빵 나누기를 하다가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한 단원은 “그냥 한 짝도 근처에 던지고 올 걸 그랬어요. 한 짝이면 신지도 못할텐데…” 하고 울상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우리는 매주 한 밤중에 빵 한쪽을 둘러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무질서의 극을 달리는 와중에도 선하고 정직한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자주 눈에 띈다.
한갓진 곳에서 홀로 잠들어 있는 노숙자에게 다가가 이불 삼아 덮고 있는 신문지를 들추고는 “빵 있어요 하고” 봉지를 밀어 넣으면 벌떡 일어나 함박 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손을 흔들어 보인다. 얼마나 힘차게 손을 흔드는지 가녀린 어깨가 부서질 듯 들썩인다.
언젠가는 빵을 나눠주고 급히 떠나는 우리 차를 열심히 따라오는 소년이 있길래 창 밖으로 빵 한 봉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이 소년, 빵을 낚아 챌 생각은 안하고 씨익 웃어 보이더니, 가슴팍에서 자기가 갖고 있던 빵 한 봉지를 꺼낸다. 이미 받았으니까 자기는 더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빵 나누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날이면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불쌍해서 슬픈 것은 잠시다.
나의 무력함에 화가 나고 분노가 일고 그러다 제 풀에 지친다. 같은 세상에 태어나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데 그들은 왜 이렇게 고된 삶을 살아야 하나, 답답하고 답답한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당장 먹을 빵 한 조각 주는 것뿐이라니. 오늘 빵을 준들 당장 내일이면 그들은 또 배가 고플텐데.
그렇게 짧은 전쟁을 치르고 온 밤에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다. 추운 밤 뜨끈하게 덥힌 전기 담요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은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도, 다 허영이고 사치인 것만 같아 죄책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건강하게 태어나 부모님 사랑 받고 자라, 건강하게 교육 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기에 해당하는 요즘은 거의 매일같이 이디오피아에 비가 내린다. 아프리카도 이렇게 추울수 있다는 것을 이디오피아에 와서 처음 알았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다리 밑 수천 명의 오갈 데 없는 도심의 노숙자들은 오늘 밤도 한 데서 몸을 움츠릴 것이다.
+장단기 자원봉사 관련 문의msmcm@hanmail.net
(에티오피아 MCM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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