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시설의 스파나 찜질방도 아닌 ‘동네 목욕탕’ 타일벽에 백조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탕안에는 ‘백조의 탈을 쓴’ 여성이 동동 떠다니고 있다. 카파(Korean Arts Foundation of America)가 수여하는 2008년 아티스트로 선정된 뉴욕의 비디오 아티스트 이재이씨의 수상작 ‘목욕탕’ 시리즈 중 하나인 ‘백조’의 내용이다. 연작중 하나인 ‘북극곰’도 비슷한 내용이며 ‘나이애가라 폭포’는 폭포 그림앞에서 우비를 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코믹한 모습을 담았다.
누가 봐도 의도된 조악함과 가벼움이 느껴지는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심플해 보이지만 매우 정교하고 독창적이며 지적 전달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들 작품 외에도 관념과 이미지의 허상을 조명하는 비디오와 사진들이 지난해부터 고베와 파리 그리고 한국내 전시를 통해 호평을 받으며 이재이씨는 떠오르는 젊은 아티스트로 주목을 받고 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뉴욕에서 줄곧 활동하고 있는 이씨는 “처음부터 비디오라는 매체에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회화와 사진 등 여러 분야의 작업을 하던 중 작업 모습을 비디오로 담는 시도를 했고 내가 추구하는 작품을 가장 잘 전달할 매체가 비디오라는 걸 발견한 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러나 촬영이나 조명, 이펙트, 편집 등 본질적인 비디오의 활용성 보다는 프레임 안에 담기는 인물들의 행위를 강조하는 퍼포먼스의 성격이 강한 것이 이씨의 작품이다. 5명의 여성이 5개의 고무줄을 넘는 장면을 담은 ‘음표’라는 작품이나 사람들이 모여서 껌을 씹어 바닥에 뱉는 ‘벚꽃 나무’ 등은 전형적인 퍼포먼스의 기록물이라고 부를 수 있다.
광고와 방송, 잡지의 사진 등 현대의 미디어 이미지들은 대부분 대중들에게 ‘헛된 욕망’과 ‘가상의 현실’을 전달한다. 이씨의 의도된 조악함(키치)은 이미 진지함을 찾아보기 힘든 헐벗은 욕망만이 가득한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전략이 유효하다고 믿고 있다. 욕망은 진짜지만 욕망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갈수록 정교하게 진짜를 흉내내기 때문이다.
“내가 키치스럽게 생긴 가짜 토끼 귀를 달고 그 귀를 파는 작품이 있어요. 사실 아무리 파봐야 내 팔만 아프죠. 욕망과 그것의 실현 불가능한 현실의 괴리 같은 걸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이재이 작가는 가짜인 것과 헛된 것을 ‘진짜 가짜’처럼 보이게 함으로서 일상의 허구를 벗기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 영화 유학도가 많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다니면서 “영화과 학생들 대부분 내가 졸업시켰다”고 우스개로 말할 정도로 이씨는 단편영화의 미술 감독으로도 많이 참여하기도 했다.
<박원영 기자> w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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