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혼 전에는 손이 고왔지만 이민 온 후 온갖 일을 하고 아이들 셋 뒷바라지 하느라 손 한번 들여다 볼 시간 없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는 22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서울에서 고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당시 서울은 많이 발전해서 동창들도 모두 풍요롭게 사는 모습이었다. 동창 하나가 내 손을 힐끗 보더니 “어머, 너 손이 왜 그러니?” 하고 놀라는 것이었다.
내 손은 힘줄이 튀어나오고 손톱에 매니큐어 한번 안한 손이었다. 하지만 병 없이 지나온 손이기에 나는 내 손이 좋아보였다. 내가 “우리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것인데 손을 아끼면 뭐하느냐”고 했더니 모두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치였다.
지난달 나는 한분의 아름다운 손을 보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게 되어 마음이 흐뭇하였다.
12월 초 우연히 교회에서 한 여자 선교사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그전에는 별 관심 없이 스쳐버리곤 했지만 그날은 유심히 보았다. 추운 날씨에 그는 몸을 움츠리며 빵 보따리를 들고 와 교인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날 나는 그를 집으로 잠깐 모시고 와 내가 입던 잠바를 드렸다. 그는 하얀 잠바라고 반가워하며 입었다. 옷은 꼭 맞았다. 그리고 따뜻하다며 좋아했다.
나는 그 순간 죄책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바를 입지도 않고 1년 내낸 걸어만 놓았던 것이 죄스럽게 생각 되었다.
그 선교사는 추위에 떨면서 무숙자들을 위해 빨래 해주고 음식 해주고 빵 보따리를 들고 헤매느라 손이 다 트고 손마디는 다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만져보았다. 너무나 튀어나온 손마디를 내가 의사라면 당장 고쳐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손인가. 그 손을 가지고 하나님한테 가면 얼마나 큰 상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얇은 바지가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를 위해 하얀색 바지와 하얀색 스웨터를 샀다. 그 선교사의 아름다운 손이 잊혀 지지 않는다.
김현숙/재미 3.1여성동지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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