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의 모든 미술가들이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현대 미술에 혁명을 몰고 왔다. 그는 1917년 뉴욕의 전시회에 남성용 변기를 뒤집어 놓고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출품한다.
주최측인 독립예술가협회는 작품을 제출한 사람은 누구라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뒤샹의 ‘샘’은 대다수가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작가가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기성품(Ready made)을 사다가 제목만 붙이고 거짓이름으로 서명한 뒤 제출한 것을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뒤샹은 2년 전인 1915년에 이미 의자위에 자전거 바퀴를 붙여서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레디메이드’를 통해 뒤샹은 ‘예술 작품”을 규정짓는 모든 조건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예술 작품은 작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택 한다’는 것이고, ‘독창성’이라는 왕관을 내려놓음으로써 원본과 가짜의 구분이 불필요하게 되었고, 신과 같던 예술가의 지위도 강등시키게 되었다. 또한, ‘변기’가 박물관 안에 전시된다는 사실이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상기시킴으로써 ‘기관(institution)’에 대한 비판의 길도 열어놓게 된다.
1914년 취리히에서 탄생한 다다운동(Dada)을 계승한 뒤샹은 뉴욕에서 활동하면서도 기존의 예술, 예술가, 예술 작품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들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레디메이드’의 도입이었다. 후에 우리는 수많은 발견된 사물(found object)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박물관이나 화랑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된다. 뒤샹은 자신의 후반기 작품들을 통해서 전시 공간내에서 작품이 중심이고 관객이 주변으로 머무는 구조를 뒤집는다. 관객이 작품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만듦으로써 후대 예술가들이 관객을 주제로 삼은 많은 실험들을 가능하게 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 강사 김지혜는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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