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잠깐 있다가 떠나가는, 방랑의 존재이다. 만약 누군가 방랑의 본질을 캐 낼 수만 있다면 세계는 산다는 공허스러움에서 그만큼 쉽게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쉽게도 세계는 길을 묻는 질문만 있을 뿐 답이 없다. 여전히 어렵고 낯선 방랑일 뿐이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나 둘씩 떠나간 빈 자리는 외로운 나그네의 피리소리처럼 휑한 바람만 몰아칠 뿐, 한번 간 인생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타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음악은 친구와 같은 위로를 주곤 한다. 음악이 방랑의 본질을 표현해 주는 향수의 예술이기 때문이리라. 이민 초기에 심포니 홀이나 공연장 등을 기웃기웃했던 것도 아마 외로움의 굶주림을 달래기 위한 호구지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곳(San Francisco)은 많은 공연이 연중무휴 열리고 각종 전시, 문화행사로 외로움을 달래기엔 안성맞춤의 도시였다.
SF는 미국에서도 문화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오페라도 성행하고 뛰어난 교향악단도 있다. 특히 SF 시빅 센터에는 SF 오페라 하우스, SF 심포니 홀 등이 있는 곳이다. 특히 데이비스 심포니 홀은 날렵한 유리창문을 두른, 근대식 건축 양식을 한껏 뽐내고 있는 SF의 자랑거리기도 하다.
SF (데이비스)심포니 홀에서 교향악을 듣고 있다 보면 늘 희비가 교차하곤 한다. 하나는 이처럼 좋은 교향악단을 지척에 두고 원하면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 아쉬운 점은 SF 심포니가 쓰고 있는 연주 홀이다.
SF 심포니는 ‘데이비스 심포니 홀’이 원래의 홈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워 메모리얼 오페라 하우스를 빌려 쓰고 있었다. 현재의 데이비스 심포니 홀이 완성된 것은 1981년이었다. 당시 큰 뉴스거리였던 심포니 홀은 그러나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무엇보다도 연주자들끼리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는 음향장치가 혹평을 받았고, 객석에서도 음향 수준은 마찬가지였다. 우선 3천 석에 가까운 홀이 너무 컸고, 전체적인 음향이 실패작인 것으로 판명 났다. SF 심포니 홀은 이후 몇 차례 대 공사를 펼쳐 음향효과를 개선해 나갔다. 우선 무대 뒤에 있는 객석의 수를 대폭 줄이고 반사 음을 노려 담을 높이 쌓았다. 객석도 2천 3백석 규모로 줄이고 천정에도 유리판을 늘려 달았다. 그러나 수준은 여전히 LA 디즈니 콘서트 홀, 동부의 카네기 홀이나 보스톤 홀과 같은 일급 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음향이 상당히 개선된 관계로 요즘에는 데이비스 홀에 대한 불만은 많이 줄어든 편이다.
이 곳(SF)에서 연주하고 있는 심포니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베이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는 사항일 것이다. 얼마 전 한 음악잡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SF 심포니의 수준은 세계에서 13위 정도인 것으로 평가 받았다. 물론 이는 최근의 연주내용, 각종 음반, 지휘자의 수준 등을 종합 평가 내린 것으로서, 1위에는 암스텔담 콘세르트헤보우가 선정됐고 부동의 1위를 지키던 베를린 필하모니는 카라얀 서거 이후 내리막 길을 걸어 2위로 쳐졌다. 미국내 최고 오케스트라는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1, 2위를 다투고 LA와 뉴욕 그리고 보스턴이 3,4,5위, 이어 SF 심포니가 순위를 이었다. 유진 오먼디 시절 전성기를 구가하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어쩐 일인지 SF 심포니에 뒤쳐지고 말았다. 아마 지휘자의 역량이 크게 작용한 듯 SF 심포니는 마이클 틸슨 토마스(MTT)를 영입한 뒤 프로코피에프(로미오와 줄리엣)와 말러(교향곡) 등 다수의 음반 녹음에서 그래미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MTT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상큼한 사운드를 이끌어낸 다는 점일 것이다. B급 심포니에서 1급 사운드를 이끌어내는 것이 MTT의 장점이라고 하겠다. 관악기 파트의 취약점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SF 심포니의 연주 중에 다른 어느 교향악단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일급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말러의 교향곡 연주가 그것이다.
유태계 MTT는 최근 수년간 말러를 집중적으로 연주하고 있으며, 교향곡 6번 등의 음반은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번부터 10번까지의 전곡 녹음도 눈앞에 두고 있다. SF 심포니는 이번 시즌에도 9월 16일부터 10월 3일까지 ‘말러 페스티발’을 개최할 예정이다. SF 심포니가 연주하는 말러의 곡은 지구상에서는 더 이상의 음향은 들어 볼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는 평이다. 교향곡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기회일 것이다.(SF 심포니는 9월9일 2009-2010시즌을 개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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