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프로듀서가 참여한 최초의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화제를 모았던 드림걸스가 지난 12일 할렘의 아폴로극장에서 3주간의 월드 프리미어를 마쳤다. 이번 프리미어는 1년간 진행 될 미 순회 공연을 앞둔 전초전이었으며, 브로드웨이 본 무대에 정식으로 막을 올릴 수 있을 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공연이기도 했다.
수퍼스타 다이안 로스가 속했던 3인조 ‘수프림스’를 모델로 한 드림걸스의 줄거리는 단순하
다. 60년대를 배경으로 시골출신의 여성 흑인 보컬 3명(에피, 디나, 로렐)이 백인 중심의 쇼 비즈니스계에서 성공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야망,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담고 있다.
드림걸스는 노래와 춤을 즐기기에 편한, 전형적인 쇼 중심의 뮤지컬이다. 영국 출신 로이드 웨버의 작품들처럼 극적인 드라마 전개와 클래식하고 웅장한 분위기의 뮤지컬이 90년대 후반까지 인기였지만, 이후 시카고와 맘마미아 그리고 최근의 저지보이에 이르기까지 미국적인 쇼 뮤지컬이 득세한 것이 이 작품의 리바이벌을 이끌어 낸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배우들과 스탭들의 수준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인공인 에피역의 모야 안젤라는 공연 내
내 믿기 않을 정도의 스태미너와 성량을 과시했고, 커티스, 지미, 마티 등 주요 남자 배우들의 연기와 춤도 브로드웨이 1급 캐스트다운 면모를 보였다. 특히 명백하게 제임스 브라운을 흉내 낸 지미 역의 체스터 그레고리는 시종일관 관객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노래도 아니고 대사도 아닌’ 특유의 뮤지컬 송을 썩 좋아하지 않는 관객에게는 한곡 한곡이 팝 싱글과 마찬가지인 드림걸스가 더욱 편안했을 것이다. 오프닝인 ‘아임 루킹 포 섬씽’을 시작으로 마지막 타이틀 곡 ‘드림걸스’까지 소울 음악의 향연이 쉴 새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시각적인 즐거움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계속 화려하게 변하는 레이저 무대 장치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처럼 오페라 무대와 필적하는 정통
무대장치와는 대척점에 서있는 개념으로 빠른 장면 전환에 효과적인 것은 물론, 작품의 분위기에 가장 적절한 장치였다. (한국 무대를 통해 실험됐고, 이 무대장치의 임대료가 한국 프로듀서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더욱 주의 깊게 보게 됐다) 꼭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번 관극행위의 큰 즐거움이 상영 공간 자체와 관객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연기와 춤, 노래, 무대, 조명, 음악, 의상 등 종합예술의 총아인 뮤지컬을 감상하는 요소중에 일반적으로 관객과 극장을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이 공연은 달랐다.
관객들은 드림걸스라는 뮤지컬의 관객인 동시에 3인조 드림걸스의 아폴로 극장 아마추어 나잇 데뷔를 지켜보는 극중의 실제 관객이 된다. 이전에 몇 차례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있지만 극의 처음부터 이렇게 관객들이 큰 환호를 보내며 몰입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더 크고 화려한 무대에서 이 뮤지컬을 본다 해도, 바로 이 시각 아폴로 극장에서 느끼는 감흥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아폴로라는 공간이 내뿜는 아우라 때문이다. 그리고 내 좌석 주위의 몇몇 흑인 관객들은 단 한순간도 가만 있지 않고 무대에 반응하며 기자
를 덩달아 들뜨게 했다. 판소리 한마당을 점잖은 신사, 숙녀 관객들로 가득찬 국립극장에서 보는 것과 전라도 촌부들과 어울려 보는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워낙 1막의 마지막이 절정이었기 때문에 2막 전체의 분위기 가라앉았던 것이다. 지미의 ‘It’s All Over’와 에피의 ‘I’m not Going’의 열광을 살려놓을 만한 곡이 2부에 없었다. 게다가 모든 배우들이 등장해 한바탕 무대를 뒤집어 놓는 폭발적인 대미를 기대했으나 “어, 이 노래가 끝이야?”라는 미진함을 남기며 커튼 콜이 시작됐다. 드림걸스는 ‘감동’까지는 아니었지만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준 흥겹고 즐거운 공연이었다.
뮤지컬에서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 작품을 보는 150분 동안 큰 불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 만큼더 보인다”라는 명언은 이 작품에도 마찬가지다. 제임스 브라운의 무대 매너를 접해 본 관객, 수프림즈를 포함해 모타운 레코드가 지배했던 60~70년대 흑인 음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훨씬 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다. 과 같은 이유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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