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만들어 낸 말 중에서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연예면에 자주 실리는 ‘연기투혼’이란 단어다. 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속 배역을 위해 좀 망가지는 경우 자주 사용되는 데, 특히 여주인공이 과감하게 벗거나 머리를 짧게 깎는 경우 어김없이 쓰인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역을 위해 생명에 지장이 가도록 굶은 김명민의 경우라면 모를까, 배우가 연기를 위해 좀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투혼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 이런 기사가 늘 먹히는 것은 ‘신체발부에 관한 것’에 유난히 민감한 우리의 정서탓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연기인데 사람들은 “머리를 잘났네, 살을 뺏네, 막 벗었네” 등을 더 화제로 삼는다.
저지시티 뮤지엄에서 전시중인 비디오(퍼포밍) 아티스트 윤자영씨는 자신의 비디오 속에 누드로 등장하고 머리를 삭발하며 그렇게 자른 머리카락으로 기묘한 형태의 추상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그의 비디오를 보고 만약 ‘예술투혼’이란 우스운 표현을 쓴다면 작가의 의도를 흐리는 것이 되지만, 워낙 시각적인 충격이 강한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의 의미’보다는 ‘작가의 의도’를 먼저 궁금해 하는 것도 일반 관객으로서는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설명을 직접 들으면서 그의 작품들을 유심히 감상하다보면 ‘센세이셔널리즘’
이나 ‘섹슈얼리티’는 그의 의도가 아니고 오히려 일부려 배제하려는 개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벌거벗고 머리를 깎는 행위는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작가의 가장 원초적인 퍼포먼스다. 오히려 그 상태로 누워있는 작가의 몸에는 여성과 남성의 구별도 없어지고 순수한 의미의 한 인간만이 남는다.
작가의 연작인 ‘Sensory Thought’ 중 하나를 보자. 윤씨는 2008년 메인주 벌판에 야외무대를 직접 세우고 비디오를 고정 설치한 뒤 세트 안에 벌거벗은 채로 10시간 동안 누워있었다. 10시간 분량의 테이브를 7분으로 고속 압축한 비디오에는 작가의 머리가 차츰 깎여나가고 그 머리카락이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듯 하나의 조형물로 변해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국에 유학 온 2008년 이후 벌써 5번이나 삭발 퍼포먼스를 한 그에게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의 생각, 나의 고정 관념, 나의 룰 등을 벗어나간다는 의미”라는 것이 작가의 대답이다. 명상을 통한 현존 그리고 참 자아와의 만남이라는 작품 요소들은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실제로 그는 크리스챤이며 종교를 주된 주제로 삼고 있지는 않다.
머리카락을 직조하는 과정은 삭발과 함께 윤자영씨가 추구하는 대표적인 예술 행위다.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엮어가는 세밀한 작업을 하면서 그는 명상의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거미줄처럼 가는 머리카락 작품을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 관객들은 작품을 유심하게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대학시절 머리가 굉장히 길었습니다. 자주 빠지기도 하구요. 그렇게 빠진 머리카락을 보면서 뭔가 육감적이면서도 독특한 느낌이 오더라구요. 이걸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홍익대학교 서양화학 대학원을 마치고 메릴랜드 인스티튜트 칼리지와 크랜브룩 아카데미에서 석사를 받은 윤씨는 미 곳곳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초대 작업을 하면서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3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4월에는 플로리다, 5월에는 유타에서 작업이 예정되어 있다. 마지막 삭발을 한 지 석달이 지나 조금 자라기 시작한 그의 머리카락이 다시 잘려나갈 때가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박원영 기자>
머리카락을 이용해 퍼포먼스와 사진, 비디오 작업을 병행하는 윤자영씨와 작가의 비디오 작품 스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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