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주
데일리NK 편집국장
최근 한반도 안보 정세를 뒤흔든 두 가지 사건-서해 천안함 침몰과 황장엽 前노동당 국제비서에 대한 북한의 암살조 파견은, 우리가 김정일 정권의 본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정확히 일깨워주었다.
황장엽 전 비서(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는 암살조 파견에 대해 “내 나이 몇인데 그런 걸 신경 쓰겠느냐?”면서도 “어차피 김정일은 할 일이 그것 밖에 없으니 계속 이런 시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격침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1999년 6월 제1차 서해교전 이후 지난해 11월 대청해전까지 계속 도발해 왔다. 하지만 해상전(海上戰)에서 잇따라 한국 해군에 패배하자 비정규 특수전으로 천안함을 타격한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황위원장은 “대한민국은 천안함 침몰로 정말 크게 잃었다”며 “하지만 이번에 김정일 정권의 실체를 정확히 알게 된다면 더 큰 것을 얻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지나오면서 우리가 ‘정말 크게 잃은 것’은 다름 아닌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북한체제는 이미 1960년대 말부터 동유럽식 구사회주의와 내용적으로 완전히 결별했다. 이후 김일성유일사상(주체사상)에 따라 수령-당-대중의 수직체계가 세워졌고, 1994년 김일성 사망 후에는 ‘선군(先軍)정치’라는 이름으로 군사우선주의가 훨씬 강화되었다. 90년대 초 촉발된 핵 개발이 선군주의의 핵심이다.
김정일 정권은 끊임없이 한반도에 군사긴장을 높여 놓아야 그것을 빌미로 하여 한국ㆍ미국ㆍ일본 등과 경제지원 협상을 벌여 생존을 모색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도 계급주의 정권은 원래 ‘투쟁대상’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북한 내부에 지주 자본가ㆍ반당종파분자ㆍ기독교인 등등에 대한 계급독재가 다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른바 ‘제국주의’(美)가 투쟁대상이 되는 것이고, 또 ‘남조선 괴뢰도당’은 북한정권 유지를 위한 ‘영원한 투쟁 대상’이 된다. 따라서 북한정권은 핵이든 뭐든, 한반도에 긴장상황을 만들어 놓아야 미-북 대화 등 생존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쯤은 전문가라면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의 안보 방어벽이 뚫린 이유는 지난 10년간 햇볕정책이란 이름의 대북 유화정책(宥和政策)이 이후 북한정권에 대한 근본 이해에서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피폐해진 경제상황 등을 감안하면 북한 지도부도 개혁개방으로 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우리와 국제사회가 도와주면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우리가 준 현금과 각종 경제지원은 도리어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들어갔다. 김정일 정권은 철저히 햇볕정책을 역이용한 것이다. 결국 북한은 90년대 초 제1차 핵위기를 촉발한 후 2006년ㆍ2009년 두 차례 지하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에서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추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햇볕정책이 실패한 근본 이유는 북한정권에 대한 초기진단 오류 때문이었다. 의료행위에 비유하자면 명백한 오진(誤診)이었다. 초기진단에서 오류가 발생했으니, 치료 방법-사후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고 결국 햇볕정책은 파산한 것이다.
지금 북한 핵, 탈북자 등 북한인권, 식량난 등 한반도 문제 이슈는 기본적으로 ‘북한문제’이지, 남한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한반도 상황이 얼마나 좋아졌느냐를 따지려면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데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안보상황은 지나간 잘못된 대북정책을 지적하는 데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김정일 정권의 대남 전략은 단기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유화정책으로 되돌리도록 강압하고 있다. 또 남한 내부에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토록 하여, ‘결과적’으로 친북세력의 활동에 유리하도록 우회지원 해주려는 것이 당면한 목적이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의 수준을 계속 높여서 이를 빌미로 ‘한반도평화협정’ 논의를 강제하고,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 군사동맹 파기로 가보자는 전략이다. 물론 김정일의 전략대로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 노선이 김정일의 생존전략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 민주정부로 교체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대남도발은 점점 심해지며, 핵문제, 경제난 등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튼튼한 한미동맹을 기초로 하여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내면서 김정일 정권을 개혁개방 정부로 교체해주는 방향으로 대북전략을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이 동북아의 평화 번영과 한반도 선진화를 담보하는 길임을 인식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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