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만남이 계속되는 관계도 있고 이별, 또한 겪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더하여, 만남이 지속되는 관계도 그렇지만 이별의 경우에는 그리움이나 후회를 안고 추억하며 살게 되는 농도가 깊다. 나에게도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그중에 한분은 기도의 훈련을 시켜주신 목사님이시다. 꾸지람과 호된 사랑의 매도 치셨지만, 허물 투성이 인 나에게 기도의 참뜻과 소망을 깨닫게 해주신 분이다. 기도의 동산은 형제봉과 능력봉이 있다. 매주 금요일이면 그 바위밑에서 기도를 했다. 길고 긴 많은 기도 속에는 북한 땅의 형제들을 위한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나아가서는 세계와 인류를 위해 기도를 했다.
겨울이면 옷을 두툼하게 입고, 그위에 비닐덮개를 뒤집어 쓰고 추위를 견디기도 했던 기도의 훈련 이었다. 그 삼각산 입구에 있는 노점상에서 비닐덥개를 사입고 먹는 뜨근한 우동맛은 일품이었다. 돌같이 굳어진 마음을 회개하고 가슴이 녹아진 때문일까, 눈덩이 만큼 몸안에 쌓여 있던 죄,흠,티들이 면발을 타고 뜨거운 국물과 함께 내려간듯 가벼웠다.
능력봉은 눈만 감으면 피색깔로 변한다. 그래서 보혈봉이라고도 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우리를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신 주님께, 그 보혈봉 밑에서 두손을 마주잡고, 엎드리고 또 업드려 기도를 하기도 했다. 우리를 위해 희생의 제물로 돌아 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무엇과 바꿀수 있을 것인가.
아뭏든 그 당시에 내가 몸담았던 교회는 광복절 주일에는 애국가를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우리나라가 겪은 36년의 치욕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의 희생이 있었던가. 독립운동가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들이었다. 내가 지금 믿는 사람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목사님과의 만남으로 기도가 나의 삶이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도는,기독교인으로서의 이전에 인간적인 그리움, 슬픔,고통까지 완화 시켜주는 힘이 있다. 때문에 만남과 이별에 얽힌 어떤 감정들도,거기에 뜻이 있고 길이 있음으로 감사를 할수 있는 축복을 덤으로 얻기까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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