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31번지는 특별한 동네다. 서울의 전통 주거 지역으로 지정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정말 몇 채 남지 않은 도심 속 시골같은 한옥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밥냄새 풀풀 풍기면서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서너번 야채와 과일, 생선을 실은 트럭이 지나가면 달려나가 장을 보고, 파전이라도 부치면 나눠먹는 인심이 있는 동네이다.
안국역에서 내려 가회동 31번지가 시작되는 북촌길에 들어서면, 시내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골목길 너머로 검은 기와 지붕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있다. 이 골목길 중턱에 오르면 인동초가 담장을 감고 올라가는 작은 한옥이 있다. 세 칸 방에 부엌과 목욕탕 그리고 두 평 남짓한 마당이 딸린 아담한 한옥.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이는 것 외에는 앞집 기와지붕과 뒷집 돌담이 보이는 한옥. 비가 오면 기왓 골골이 떨어지는 낙수가 그림같고, 눈이 오면 기와장에 수북한 흰눈이 그대로 풍경화다. 문을 열면 작은 마당에 하늘이 들어오고 바람이 지나가는 집. 우리 세 가족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 오기 전 2년 가까이 살았던 집이다.
최근 북촌 한옥 마을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알려지면서 아침이면 일본인 관광객을 실은 버스나 투어밴이 골목길을 가로막고, 주말이면 서울 주민들이 서울에 이런곳이 있었나 싶은 얼굴로 사진기를 들이민다.
북촌 한옥 마을은 1930년대 토지가 소규모의 택지로 분할되었고, 90년대의 다세대 주택 붐에 힘입어 편법으로 무수한 한옥들이 스러져간 쓰라린 역사도 안고 있다. 이런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는가! 2000년에 들어 그나마 300여 채도 남지 않은 가회동 일대의 한옥을 보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가회동 한옥들은 허울 좋은 보존과 투기의 깃발 아래 양장바지에 갓을 쓴 선비같은 모습으로 신축의 톱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용성이란 측면에서야 양장 바지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더이상 선비의 차림이 아니지 않는가? 한옥은 나무와 흙과 종이와 돌로 만들어진 그대로 자연이다. 이제 자연을 보호할 때도 되지 않았나?
=====
아루나 리씨는 원래 불가에 귀의한 스님이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1999년 찾은 인도에서 깨달음을 찾아 인도로 온 미국인 청년을 만나고 한국에 돌아가 결혼까지 해버렸다. 미국에 살다 남편이 연합뉴스에서 일을 하게돼 2년간 한국에 가서 있다 최근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창립한 소수계 언론연합체인 New American Media에서 소수계 언론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들이 하나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