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범의 누명을 벗고 석방된 이래 마이클 A. 그린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한밤중에 나와 그는 주변을 산책한다. 석방 후 묵고 있는 이모의 집 동네는 깔끔하고 조용하다.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는 그의 머릿속에선 해답을 못 찾은 질문들이 복잡하게 회오리친다 - 27년 전 왜 나는 유죄판결을 받은 것일까.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은 꼬리를 문다. 텍사스 주정부가 제의한 220만달러의 보상금에 합의해야 하나, 아니면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킨 수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할까. 보상금을 받으려면 소송권을 포기해야 한다.
220만달러 보상금합의와 진실 밝히는 소송 사이에서 고민
18세때 피해자가 강간범 지목, 유전자검사로 45세에 무죄석방
“내가 정말 해야 할 것은 그들이 내게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겁니다. 모진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학대를 견디어야 했던 내 인생의 27년을 생각한다면 220만달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45세의 그린은 2주전 자유의 몸이 되었다. 강간 피해자의 옷에 대한 유전자 검사 결과 그가 범인일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무죄입증은 해리스카운티 검찰청이 무죄를 주장하는 복역수들의 케이스를 리뷰하기위해 새로 만든 부서의 노력의 결과다.
그린의 악몽 같았던 옥살이 - 그리고 그의 무죄 입증을 위해 앨리샤 오닐 검사가 어떻게 생물학적 증거를 발견하고 진범을 찾았는가에 대한 스토리는 미사법제도의 불편한 현실에 강한 비판의 조명을 밝혀주고 있다. 용의자들을 일렬로 라인업 시켜놓거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피해자나 목격자에게 범인을 지목케 하는 방법이 언제나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난 10년간 유전자 검사에 의해 무죄가 입증된 258명 중 4분의 3 이상이 목격자의 범인지목에 의해 유죄평결을 받았었다고 무고한 복역수 석방운동을 하는 단체인 ‘무죄 프로젝트’는 밝혔다.
텍사스에선 이런 문제가 한층 심각하다. 유전자 검사로 무죄 석방된 40명 중 80%의 유죄판결에서 결정적 요소가 바로 목격자 증언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오하이오 등에서는 목격자의 라인업 지목의 비중을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으나 텍사스 등에서는 검찰과 사법당국의 강한 반대로 비슷한 법안들이 부결되었다.
1983년 그린은 고교 중퇴생이었다. 아침엔 늦잠자고, 낮에는 아케이드에서 비디오 게임을 즐기다가 밤에는 자동차를 훔쳐 돈을 마련하는 게 일과였다.
그해 4월18일 밤 그의 동네에서 한 백인여성이 납치당한 후 도난당한 카메로 자동차 안에서 4명의 흑인남성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걸어서 귀가 중이던 그린은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피해자는 처음엔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못했다. 1주 후, 그는 자동차를 훔치고 부순 혐의로 체포되었다. 경찰은 그의 사진을 다른 몇 명의 사진과 함께 피해자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범인 중 한명 같기도 하다고 말한 피해자는 그날 오후 용의자 라인업에서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린은 자기 차례가 되자 유리 너머에서 피해자가 지르는 비명을 들었다.
재판에서 피해자는 다시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배심원은 그린의 무죄 주장을 믿지 않았다. 당시 18세였던 그는 75년형을 받았다.
분노로 미칠 것 같았던 그는 교도소 안에서 죄수와 간수,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싸우고 반항하다 가혹하게 보복당하기 일쑤인 ‘위험한 죄수’로 분류되었다. 독방에 수감된 그가 자신의 억울함과 생에 대해 숙고하게 된 것은 80년대 말이었다. 그는 법률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유죄판결 번복을 위해서였다.
번번이 좌절된 그의 청원노력에 희망이 생긴 것은 2001년 텍사스가 복역수에게 유전자 검사 요청권을 허용하는 주법을 통과시키면서였다. 그는 2005년 7월 감방에서 스스로 작성하여 타이핑한 청원서를 판사에게 보냈다. 관선변호사들의 산적한 업무로 다시 3년이 흘러가 버렸다.
2008년 판사 및 경찰관 출신으로 해리스카운티 검사장에 당선된 패트리셔 라이코스가 맨 처음 한 일 중 하나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온 오랜 관행 없애기였다. 그는 2명의 검사를 따로 배정, 유전자 검사 요청 및 무죄주장 청원 리뷰를 전담토록 했다.
오래된 케이스의 증거물은 폐기하는 관습에 따라 절망에 빠질 뻔했던 그린의 케이스는 천행의 ‘실수’ 덕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증거물 박스 하나를 실수로 버리지 않은 것. 박스 안에는 32개의 정액 얼룩이 묻은 강간 피해여성의 청바지가 들어 있었다. 검사결과 4명의 유전자가 검출되었으나 그 어느 것도 그린의 유전자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4명의 진범들은 모두 밝혀졌다. 대부분 다른 범죄로 복역 혹은 유예 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공소시효 만료로 그때의 강간 범죄로 기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케이스 리뷰를 담당하여 판결번복을 실현시킨 오닐검사는 그린이 석방되던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법대에 가는 것은 이런 일을 위해서입니다”
아직은 샤핑을 나가는 일도 ‘대단한’ 새 경험인 그린은 잃어버린 인생의 황금기, 참석조차 못한 어머니의 장례식 등을 생각하면 참기 힘들어지지만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애쓴다. 일자리도 생겼다. ‘무죄 프로젝트’에서 법률보조원 자리를 제안 받은 것. “나처럼 죄없는 사람들을 석방시키는데 헌신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동안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했다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마이클 그린.
석방 후 조카와 함께 샤핑나온 마이클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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