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영어 속담처럼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세상’이다. 돈은 마치 자동차의 기름과 같아서, 돈이 마르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돈이 없으면 부자 나라, 큰 나라도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해에 있었던 미국의 셧다운 사태는 그런 현실을 잘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우리 미주 한인사회도 꼭 마찬가지다. 돈을 많이 벌어야 성공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물속에 있으면서 갈증을 느끼는 셈이다. 왜 그럴까?
우리 한국 사람들의 머리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아주 오래된 사고방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돈을 버는 수단은 대부분이 장사(商)인데, 그 장사를 제일 아래로 치는 가치관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꽤나 괴로운 갈등이다.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사농공상이라는 가치관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배운 것이 많은 선비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대학 교수가 존경을 받는 것을 보면 여전히 선비(士)가 가장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그러나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재벌 총수나 성공한 사업가들, 다시 말하면 상(商)이나 공(工)에 종사하는 인물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는다. 그러니까, 성공한 상인이나 공업인을 가장 선망하면서도, 여전히 선비를 으뜸으로 치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중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개인적으로 고통을 줄뿐 아니라, 나라 살림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 나라의 정책이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경제를 움직이는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글 배운 선비들이 책상머리에서 지식으로만 짜내기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기가 일쑤다. 이를테면 복지정책이나 부동산 대책, 세금문제 같은 것들이 모두 그렇다. 물론 벼슬을 하는 선비가 건강하면 나라살림도 튼튼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문제다.
많은 경우, 나라살림을 맡은 선비들은 사농공상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의 부패지수는 늘 세계 상위권을 당당하게(?) 유지하고 있다. 돈 때문에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도 안 되는 부조리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동안 나라 살림은 골병이 든다.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그건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고약한 먹이사슬이다.
내가 정든 모국 한국을 떠나 낯선 미국으로 사업의 터전을 옮긴 것도 그런 부조리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정직하게 실력과 노력으로 평가를 받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발전과 도약을 위해 꼭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해도 제약이 많아 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공무원들 접대하는 일도 영 적성에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경제의 실질적 기둥인 상업을 제일 아래로 취급하는 풍조가 견디기 힘들었다. 미국에서는 그런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않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어서 좋다.
사농공상이라는 개념을 수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수평적으로 평등하게 여기는 가치관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발상의 전환 없이는 경제 발전도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나라살림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우리 미주 한인들이 겪는 갈등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의 하나가 한국에서의 직업이나 지위를 미국에서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점이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이민자의 직업은 처음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의 직업에 따라 결정된다”는 현실은 극복해야 할 문제다. 대학 교수하던 사람이 풀을 깎고, 회사 임원 하던 이가 페인트칠을 하고,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던 사람이 봉제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시인이 햄버거를 굽고… 그런 현실에서는 하는 일에 만족할 수도 없고 자부심을 느낄 수도 없을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에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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