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환의 고전산책 101
▶ <72>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한국전쟁이 한창 중이었던 1952년 발표된 헤밍웨이의 중편 소설 ‘노인과 바다’는 그 줄거리가 너무 단순하고 언뜻 보면 아무런 극적인 재미도 없어 어찌 이런 작품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을까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와 의미는 상징성에서 찾아야 한다. 인생에 대한 헤밍웨이의 실존주의적 철학 관점이 소설 가운데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노인은 쿠바의 도시 하바나에서 고기를 낚아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어부이다. 이제는 노쇠하지만 이웃 소년 마놀린과 함께 배를 타며 어부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84일 동안 계속해서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소년을 다른 배의 조수로 보낸다. 산티아고 노인은 혼자 먼 바다까지 나가고, 그의 낚시에 거대한 돛새치 한 마리가 걸린다. 사흘간의 사투 끝에 노인은 대어를 죽여 배 뒤에 매달고 귀로에 오른다. 그러나 돛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떼가 따라오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노인은 다시 한 번 목숨을 건 싸움을 한다. 노인이 가까스로 항구에 닿았을 때는 이미 그가 잡은 고기는 상어 떼에 물어 뜯겨 앙상하게 뼈만 남은 후다. 노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으로 가서 정신없이 잠든다.
산티아고 노인은 상어로 상징되는 현실의 고통과 싸우다가 고기를 다 빼앗겨 결국 현실적으로는 패배한다. 그러나 희망을 끝내 버리지 않고 돌아와서 사자를 쫓는 꿈을 꾼다. 헤밍웨이는 노인을 통해 어떠한 일에도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고난과 맞서 싸우는 데서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다.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다”
헤밍웨이의 이러한 철학은 서구인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잘 이해하게 해준다. 이 소설에서 바다는 운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의 삶의 터전을 뜻한다. 노인은 이러한 바다에서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의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배 위에서 수없이 혼자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며, 상어와 끝까지 싸우는 것은 현실의 고난에 맞서 싸우는 저항의 한 표현이다. 상어에게 고기를 빼앗기고 극도로 피곤한 가운데 돌아와 사자 꿈을 꾸는 노인의 모습은 절망과 허무를 뛰어넘은 인간정신을 보여준다.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모든 이상과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빠져서 주로 국외에 거주하며 집필활동을 벌였다. 그는 전쟁으로 인한 신념의 상실과 절망 속에서 생활의 방향을 잃은 수많은 전후 세대들의 심리상태와 현실을 소설 가운데 묘사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좋은 울리나’ ‘잃어버린 세대’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킬리만자로의 눈’ 등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20세기 미국 문학사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로 꼽힌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의 결혼 실패와 항공기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라다 집필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이다호에서 엽총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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