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병옥 작가의 신작(?) 카페 ‘다큐멘트’
▶ 문 닫은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 자리에 커피향 그윽한 문화공간 꾸며 발길 북적, 11월28일까지 박혜숙 등 13인 ‘페이스’전
카페 갤러리 ‘다큐멘트’. 세인트 앤드류스 길 쪽으로도 문을 냈다.
아티스트들이 꾸민 카페답게 시크하게 심플한 카페 ‘타큐멘트’. 오른쪽 벽에 ‘페이스’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 연말 정들었던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가 문을 닫았을 때, 그 서클에서 자주 어울리던 작가 고병옥이 갤러리 자리를 자기가 인수해 ‘좀 멋있는 카페’로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그러기를 해가 지나 겨울이 가고 봄이 왔으며 또 여름이 되도록 안에서 뚝딱이기만 했지 도무지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서 목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던 어느 날, 드디어 짜잔~ 카페가 문을 열었다. 이름 하여 ‘다큐멘트’(DOC.U.MENT).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카페 갤러리로 정체성을 규명한 ‘다큐멘트’는 지난 9월28일 첫 전시회로 ‘페이스’(Face)를 개막했다.
얼굴에 관한 13인의 작업을 모아 벽에 걸었는데 박혜숙, 민영순, 신경미를 비롯해 데이빗 벨, 엔리케 카스트레존, 시릴로 도미니, 타드 그레이, 마거릿 혼다, 크리스티 리피어, 메리로즈 멘도자, 샌딥 머커지, 알란 나카가와, 맷 워델 등 주류화단에서 활동이 큰 작가들이 재미있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특히 카페와 전시공간이 서로 압도하거나 방해하지 않으면서 세련되게 걸린 디스플레이가 썩 맘에 든다.
“크게는 커피샵이지만 하나의 아트웍을 해볼까 하고 시도한 공간입니다. 한인타운에 좋은 문화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괜찮은 문화예술을 보려면 늘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젠 여기로도 가져와 보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커피샵에서는 진지한 예술작품 전시가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도 좀 깨고 싶구요”
고병옥과 그의 파트너 권소정은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하는 실력 있는 작가들이다. 컨셉추얼 혹은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업과 퍼포먼스를 주로 하는 멀티미디어 작가들로서, 고병옥은 2010년 솔웨이 존스 갤러리 작품전으로 LA타임스 미술전문 기자의 좋은 리뷰를 받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는 권소정은 ‘한해 계획 세우기’(Planning a Year)라는 개념 작업이 한국 화단에서 크게 주목 받았다.
두 사람이 ‘맛있는 커피와 좋은 예술이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도 주류화단에서 활동하며 좋은 작가들을 친구로 많이 둔 배경이 주효했을 것이다. 다큐멘트에서 서브하는 모든 컵에는 바닥에 수수께끼 같은 날짜(Dec. 2. 2013)가 써 있는데 그게 바로 고병옥과 권소정이 느닷없이 ‘카페 해보자’고 결정한 날이란다.
이름 ‘다큐멘트’는 이 공간을 만들고 꾸며온 지난 8개월여 동안 쌓인 온갖 서류, 그 기록을 의미한다. 앤드류샤이어 갤러리가 떠난 후 내부를 다 철거하고 새로 만든 블루프린트부터 플러밍 공사, 수차례의 인스펙션과 허가 받는 일, 페인트에서 실내장식, 탁자를 짜고 커피 고르는 일까지 그 서류와 기록들이 너무 많아서 그 자체로 ‘예술’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 ‘서류 작품들’을 나중에 예술적인 형식으로 변환해 전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공간은 아주 심플한 디자인 때문에 굉장히 시크하고 컨템포하다. 전시공간을 생각해 작품에 방해되지 않게 일부러 장식을 많이 배제했단다. 탁자와 캐비닛, 카운터 탑, 램프 등이 대단히 깨끗하고 심플해서 물어봤더니 모두 고병옥 작품이라고 한다. 한 달 동안 유튜브에서 공부하며 나무를 사다가 자르고 두들겨서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다. 워낙 손재주 좋은 작가이긴 하지만 정말 놀라운 솜씨다. 의자는 밖에서 사온 제품, 정겨운 학교 체어들이다.
둘러보니 벌써 손님이 꽤 많다. 대다수가 젊은 사람들인데 3분의 2는 타인종이라고 한다. 광고를 한 것도 아닌데 요즘 젊은이들은 SNS 때문에 입소문이 빠르고, 맛있는 커피 찾아 멀리서 오는 친구들도 꽤 된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문 연지 한 달도 안 돼 벌써 LA 매거진과 LA 위클리에서 (한국일보보다 먼저!) 취재를 해갔다는 사실.
그러면 정작 커피 맛은 어떨까? 다큐멘트에서는 핸드 드립과 아메리카노만 뽑아준다. 원두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필 앤 세바스찬(캐나다)과 템플(새크라멘토) 것을, 에스프레소는 스텀타운(시애틀) 것을 쓴다. 웬만한 커피 전문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더치커피도 내리고 있다. 커피 맛 아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이유다.
그동안 커피와 에스프레소 공부 엄청했다는 그는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맛보고 잘 뽑는다는 바리스타도 많이 만나면서 카페의 맛을 결정했다. 지금은 바리스타를 3명 쓰는데 2명 더 영입할 계획이라며 그러다보니 남는 장사 아니라고 호소한다. 사실 가격이 3~6달러니, 타운의 수많은 맛없는 커피샵들에 비하면 비싼 편은 아니다.
‘페이스’ 전시는 11월28일까지 계속되고 그 이후엔 또 재미있는 3인전이 예정돼 있다. 일년에 적어도 5~6개 이상은 새로운 전시를 보여줄 계획이고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콘서트 등도 벌일 욕심이 있다니 LA 한인타운의 문화수준이 크게 업그레이드될 것 같다.
DOC.U.MENT 3850 Wilshire Blvd. #107 LA, CA 90010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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