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 밭을 망가뜨리는 새를 경계하는 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 에도 고단한 한민족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한(恨)이 담겨있다. 그 한 서린 노래를 동요로 부를 때 파랑새가 왜 희망이 아닌가 했다. 해 돋는 나라로 떠난 어머니를 그리는 ‘따오기’나 비단구두 사가지고 온다던 서울 간 오빠를 기다리는 ‘오빠생각’도 동요였다. 한 곳에 머물 수 없었고, 함께 살 수 없었던 시절, 옛 어른들은 당시 아이들 노래에 조차 털어내지 못하는 한을 이입시키며 울었다.
어머니합창단 공연의 피날레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 였다. 그 공연 후 그 어머니들이 어린 시절 불렀을 애잔한 동요들이, 그 가사가 뇌리를 맴돌았다. 미국 같았으면 아동 방치죄로 처벌 받았을 ‘섬그늘’로 굴 따러 간 엄마도 지극히 합법적인 인기 동요의 소재였다. 당장의 생계(굴)와 가족의 미래(아기)를 함께 짊어지느라 모래 길을 달음박질 치는 엄마에게 갈매기는 훼방꾼일 뿐이다.
우연이긴 하지만 요즘 자주 찡한 곡조를 접하게 된다. ‘양화대교’는 마포와 영등포를 잇는 한강다리다. 서울에 가면 그 인근에서 머문 적이 많아 익숙하다. 이 다리를 제목으로 한 노래를 한국의 인기 예능프로를 통해 듣고는 울컥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가 반복된다. 읊조리는 가사에 넉넉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엉켜 사는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계절 탓이다 하면서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GOD의 어머님께)를 찾아 들었고 심순덕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다시 읽었다. 그러고 보면 고단한 삶은 과거나 현재나 항상 인간에 씌워져 있는 굴레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 어쩌면 그 뒤에 늘 어머니가 햇살처럼 그늘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이 모든 나의 궁상은 사실 어머니합창단에서 비롯됐다. 지난 일요일 오후 스코키의 퍼포밍 아트 센터에서 열린 정기 연주회에 대해 사전에 품었던 내의 생각 몇 가지를 실토해야겠다. 장소가 아마추어 합창 동호인 모임의 공연 무대로는 좀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소리가 제대로 나올까 우려도 했다. 고운 한복 차림의 무대의상을 짐작했다. 객석 채우는 일도 만만치 않겠다 싶었다. 객석은 한국의 유명가수 공연만큼은 아니었어도 거의 찼다. 반응도 좋았다. 울긋불긋 차려 입은 롱 드레스의 행렬은 화려했다. 소리를 내는 열성은 모두 프리마돈나 급이다. 중요한 건 분위기였다. 평균 나이 72세가 넘는단다. 광복 후 격동의 세월을 이겨내고 태평양 건너 개척의 삶을 일군 연령대다. 그날 무대에 선 합창단원들은 살아온 시대적 배경도 배경이려니와 ‘어머니’ 만으로 자격이 차고 넘쳤다. 최상의 공연장, 더 화려한 의상도 이들의 자격을 폄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시 객석 얘기로, 크게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가족일 거라 쉬이 짐작이 갔다. 그 가족에게 묻는다. 어머니를 위해 박수 친 적 있습니까. 이날 무대는 가족에게 그런 귀한 기회까지 주었다.
그리고 내 어머니. 1928년 생(生), 2006년 몰(沒). 80을 못 살다 가신 어머니는 생전에 ‘샌프란시스코’ 가요를 즐겨 부르셨다. 그게 복선이 된 듯 미국으로 이민 오셨다가 이 곳에 묻히셨다. 지금 살아 계셔도 넉넉할, 조금 욕심 부리면 그날 무대에도 설 수 있었을 연세. 빨간, 아니면 연분홍 롱 드레스도 어울렸을 법하다.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박수 칠 기회를 한번은 줄 수 있었을 텐데.
꿈을 이루었노라고, 그 꿈은 우리 가족의 꿈이었다고, 꿈 조차 나 아닌 가족의 것으로 채워온 어머니들은 일흔이 넘어 소박한 행복을 하나 얻었다. 그마저 자식이 흉볼까 어머니답게 절제와 화합과 조화의 합창을 택했다. 어머니합창단은 곧 한국방문 공연을 한다. 공연을 포함해 한국에서의 시간을 맘껏 즐기다 오시길 바란다. 어머니는 그래도 된다. 요즘 맴도는 노랫말을 다시 적는다. 모두 행복하세요,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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