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시각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이 거대담론의 명제가 이번 칼럼의 주제로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이 곳 한인사회가 그 만한 크기로 우리 안에 녹아 있을 수도 있겠다 여겼다. 역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인가, 영이든 욕이든 늘 그리운 것인가, 시카고 한인사회의 역사도 그러한가, 여기서 지나온 시간이 앞으로의 발전에 디딤돌이 되었는가 함께 답을 구할 이들이 여기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신속한 보도라 해도 과거의 기록일 뿐이다. 새 것이라지만 뉴스 자체가 가장 최근의 지난 일이다. 비판과 전망도 모두 과거의 것에서 새 것을 구하는 작업이다. 언론이 담아 온 내용물은 과거의 기록이자 역사의 되새김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잡이 사료다.
한국일보가 올해 창간 45주년을 맞는다. 시카고에서 처음 한글 신문이 선보인 때가 1971년이다. 아직 이곳에 살고 계시는 선배들의 기억 속에 남아 생생하기도 하도 아련하기도 한 과거 시점이면서 지금도 늘 새롭다. 잉크를 롤러에 묻혀 등사판 위에 굴리는 방식으로 신문을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 내 경험을 첨부하자면 편집의 대지 작업이 있다. 암실에서의 사진 작업, 원고지에 쓰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못했던 기사 작성. 그 아날로그 시절이 대안 없는 외길이었던 때가 있었다.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 한다는 어른들의 옛 이야기는 누구에겐가는 생명력을 구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신문은 독자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야 한다고 믿는다.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다. 신문은 같은 이유로 커뮤니티 안에 있어야 한다. 45년 전 클락 길에서 시작한 시카고 한국일보가 켓지를 거쳐 서버브인 링컨우드를 돌아 글렌뷰에 새 사옥을 마련했다. 1970년대 클락 길은 한인 그로서리 스토어가 처음 들어선 곳이었다. 켓지 사옥이 로렌스 한인타운의 번성과 함께 했다면 링컨우드 사옥은 한인 주거지와 상권이 서버브로 이동할 때와 궤를 같이 한다. 4번째 사옥 이전. 글렌뷰는 현재 한인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연방 센서스 통계 상 글렌뷰에 사는 아시안은 12.5%이고 이 중 40%는 한인이다. 한국일보의 전수조사에 따르면 글렌뷰를 중심으로 한 밀워키-골프 반경 5마일 지역 내에 한인이 운영하는 업소 수가 200곳에 달한다. 업종은 38개다.
오래 전부터 알던 분이 이사를 왔으니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이웃이 된 기념이란다. 애정은 함께 지낸 시간, 함께 한 추억의 양에 비례한다. 여기에 추가할 것이 물리적인 거리임을 이 분이 일깨워 줬다. 한국일보의 글렌뷰 사옥 이전은 그래서 필연의 결과다. 한인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담기에 셀룰러 폰으로도 가능한 시야, 의미 있는 활동을 지면에 옮기기에 좋은 거리다. 독자와 광고주가 들고 나기에도 부담이 없다. ‘내 신문사’란 느낌을 주는 그 위치에 서 있다. 언론과의 관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표현 하나가 ‘불가근 불가원’이다. 멀리도 가까이도 않는 관계. 그러나 언론의 기능은 다양하고 그 다양함 중에 문화의 전승을 이끄는 책무가 있다. 한인 커뮤니티의 참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보도의 기능 외에 한인사회의 문화적 소양을 넓히는 일은 이 곳으로 왔기에 보다 친밀한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45년 전 시카고에 뿌리 내린 이들이 시작한 한국일보가 이제 다시 시카고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이들에 의해 재 탄생하고 있다. 시카고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열정으로 살필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글렌뷰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제 2의 창간’을 준비한다. 되풀이 되지만 똑같이 되풀이 되지는 않는 역사, 시카고와 중서부 한인사회의 발전적 역사를 함께 써나갈 준비를 한국일보는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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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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