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멕시코 방문 일정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한국의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 공연이다. 한국과 멕시코 문화교류 공연 순서에 있었던 것으로 공연 입장권 배포 사이트가 일시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아리랑’과 ‘베사메무초’ 연주가 교차됐다지만 이건 의례수준이고 K-팝 공연무대가 아마 공연의 하이라이트였을 것으로 쉬이 짐작간다.
박대통령이 국립 인류학 박물관을 둘러보는 등 ‘소프트 외교’로 멕시코 방문일정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소프트’는 오랜 세월 한국의 외교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던 형용사다. 수출드라이브와 자원외교, 중공업 육성, 그리고 안보외교에 가려 문화 수출은 뒷전이었다. 국가 차원의 외교로 부터 홀대받던 한국의 문화는 그러나 나라 지원없이 세계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란이 ‘대장금’으로, 일본이 ‘겨울 연가’로, 중국이 ‘별에서 온 그대’로 한국을 친숙하게 느낄 때 비로소 한국정부는 문화외교에 눈을 떴다. 한참 늦었지만, 민간의 혁혁한 공로에 편승하는 법은 알아 ‘인피니트’를 멕시코 외교에 써먹었다. 우리가 사는 미국, 미국의 젊은이들은 알고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한국문화가 있다. 한국 고향에는 누가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지 꿰뜷고 있으면서도 힙합 그룹 AOMG를 투자컨설팅 회사로 잘못 알고 있다. EXO, 다이나믹 듀오가 미국에 왔다 간 걸 아는 이는 자녀와 대화 좀 하는 사람이다. 한국 가수들의 공연무대가 시카고에서 펼쳐질 때마다 수천명이 객석을 가득 메운다. 1세를 대상으로 해서는 겨우 1천석 규모의 7080가수 공연 무대도 채우지 못하는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다운타운에는 한인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퓨전 한식당이 여러 곳 있다. K팝 가수를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즐겨 시청하는 젊은이들이 한식당을 찾는다.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우리의 2세들은 한국 노래와 드라마에 열광하는 타인종 앞에서 조금은 으쓱할 수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위안부는 일제의 만행이라고 하면 이들은 백번 동의한단다. 그게 문화의 힘이다. 얼마 후면 이임하는 김상일 총영사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는 문화 담당영사의 파견을 수시로 본부에 요청했다고 했다. 이 곳은 영사 한명이 경제와 문화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 시카고에 한국관광공사 지사가 없어지고 문화공보관 자리도 사라진 지 오래라는 대화 중에 나온 얘기다. 한번 없어지면 다시 만들어 지기가 어렵다는 현실, 이머징 마켓에 먼저 신경이 가는 한국정부의 감각을 시카고와 중서부 한인사회가 바르게 깨워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시카고는 지리적으로는 미국의 중심이면서 미국내 여행지 1위의 도시이기도 하다. 한국홍보와 문화전파에 이만한 곳을 찾기 힘들겠다 싶은데 한국정부는 시각이 다른가 보다. 돌아보면 1980년대와 90년대 까지만 해도 시카고는 한국 정부나 기업에게 홀대받는 곳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변방이 된 느낌이다. 한국정부 입장에서 거저 얻은 거나 다름없는 한류를 지속시키고 확장하는데 아주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는 것, ‘시카고 한국문화원’까지는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언론이 더 둔감했다 싶다. 문화창달이란 미명 뒤에 숨어 왜 이곳에 문화 담당영사가 필요한지 지적하지 못했다. 한국의 문화를 주류사회는커녕 2세에 전승하는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한국문화를 우리 아이들 보다 모르는 신세가 됐다.
사족이다. 한국일보가 4월 지면개편을 하면서 매주 금요일 4면을 문화면으로 잡았다. 여기에 그로서리 마트 정보를 옮겨 넣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문화의 광역대에 먹거리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언론문화 창달이란 표현은 좀 멋적기는 하지만 근사하게도 들린다. 신문을 만드는 작업 자체가 협소한 뜻풀이로 문화(文化)다. 작을 수록 더 잘 스며든다는 이치에 충실하자는 핑계라도 달아야겠다. 문화는 작은 것 부터.
<도태환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