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용하다. 일리노이주가 11개월간 예산안 통과 없이 굴러왔다. 2016회계연도가 한달도 남지 않은 지금도 예산안은 의회에 잠들어 있다. 그리고 7월1일부터는 새 회계연도를 맞는다. 그 사이 가장 웃기는 일은 복권을 열심히 팔고 당첨금을 주지 않은 일이다. 가장 심각한 일은 여러 대학이 올 가을 학기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일이다. 주정부의 그랜트에 크게 의존하는 복지사회단체가 운영난에 이미 봉착해 있고 주정부의 사무실들은 렌트비를 걱정해야 한다.
예산안 없이 어떻게 버텨왔나 싶지만 주 정부 예산은 지난 11개월 동안 매월 5억달러 이상이 지출됐다. 쓸 건 다 썼다는 얘기다. 이 추세로는 62억달러의 적자가 기록될 것이라고 주 회계감사관실은 말하고 있다. 그때 그때 급하다 싶은 용처가 있으면 주지사실과 민주당 주도의 주의회가 타협을 해서 메워나간 결과다. 그러고도 주정부의 빚이 100억달러 더 늘어날 상황이다. 적자만 더 늘렸다.
멀리 한국의 정치권이 민생을 외면하고 당략에 매몰되어 정쟁만 한다고 혀를 찼다면 우린 참 억세게 운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기도 상세한 내용을 파악 못했다 뿐이지 더 심하다.
공화당의 브루스 라우너 주지사가 2015년 취임한 이래 맞은 첫 예산안이 교착(Impasse)상태에 빠진 이유는 극명한 정견 차이 때문이다. 고질적인 적자에서 벗어나 균형예산을 짜자는 원론만 초당적이었다. 라우너 주지사는 기업의 오너 출신 답게 기업과 중산층 이상의 편을 들고 나섰다. 또 노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디케이드 등 보건 예산을 크게 줄이는 내용도 포함된다. 민주당은 지극히 당파적인 예산안이라고 반발했다. 합의 가까이도 가지 못했다. 11개월이 넘었다. 미국의 어떤 주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예상 분석들이 나온다. 이 추세라면 10년 후 연간 적자는 140억달러가 된단다. 현재 주정부가 안고 있는 채무는 연금 포함 1천5백90억달러다. 주정부의 신용등급이 이미 떨어져 빚 이자율도 올랐다. 뻘리 갚지 않으면 빚은 점점 빠른 속도로 불어난다. 일리노이 주민 1인당 1만3천250달러의 빚이다. 여기에 연방 빚은 개인당 6만2천달러다.
일리노이대학의 재정연구소가 내놓은 해결책은 시니컬하다. 균형예산을 맞추려면 현재 예산의 20%를 줄여야 가능하다. 여기서 연금은 건드릴 수 없으니 당장 교육예산과 공공안전, 메디케이드, 대중교통 등에 들어가는 지출을 더 크게 줄여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향후 10년간 해마다 개인소득이 1.5배씩 증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 다 가능성이 없는 얘긴데 이런 처방을 내놓은 이유는 경고가 목적이다. 한 칼럼니스트는 아예 주정부 문을 폐쇄하는 것이 유일한 적자 탈출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려야 빚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줄이자는 지출 항목은 저소득층에 직접적 타격을 줄 만한다. 메이케이드를 예로 들면 저소득 노년층의 치과 치료를 포함한 의료비용 부담은 커진다. 교육예산의 감축은 교육의 질 저하는 물론 데이케어 비용의 추가부담으로 연결된다. 저소득층 대학생 장학금도 줄어든다. 대중 교통 요금의 대폭 인상은 불가피하다. 기대는 줄이고 부담은 늘려라-즉 혜택은 줄고 세금은 올라가는 상황, 이것이 일리노이에서 사는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의 운명이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두고 왜 세상은 조용한가 하고 의아해 하는 분이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조용하지 않다. 공화 행정부와 민주 의회는 여전히 치열하게 정쟁을 벌이고 있고 분석가들, 언론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예산안 없이 2년째로 접어드는 초유의 사건이 목전이다. 11월 선거까지는 둘 다 버틸 것이다. 일리노이나 한국이나 정치는 늘 차선 또는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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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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