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급진적인 이슬람 테러리즘으로 부터 모든 출신과 모든 신앙의 미국인 모두를 보호해야 합니다. 급진적 이슬람은 여성과 게이, 유태인, 기독교인과 모든 미국인을 증오합니다. 나는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을 보호하고 지킬 것입니다. 안전하고 위대한 미국을 다시 만듭시다.”
‘급진적 이슬람’이란 표현만 빼면 도날드 트럼프의 말 같지 않다. 그는 심각한 표정이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12일 새벽 올랜도의 총격 이후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공격하고 나섰다. 그가 이제껏 구설에 올랐던 여성을 비롯한 소수계와 이민자에 대한 비하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되는 ‘모든’이란 형용사로 수습하려 하는 것 같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급진적 이슬람’이란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도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후보도 같은 이유로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옳았다’는 선언이다. 그는 나아가 한번이라도 테러에 가담한 국가로부터는 이민을 받아들이지 말자고 주장했다.
과연 그가 옳은가. 오마르 마틴은 뉴욕 출생의 미국인이다. 자생적 테러의 상징으로 남을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미국의 제도 하에서 보안요원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범행에 사용한 총기도 합법적으로 구입했다. 마틴이 아프간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라는 사실 만으로 그를 트럼프가 말하는 ‘모든’ 미국인에서 뺄 수는 없다.
올랜도 사건을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 행위이자 증오 행위”로 불렀다. 테러인 동시에 차별에 의한 범죄임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인종과 성별, 종교에 따라, 또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헌법 이하 모든 하급법으로 금하고 있다. ‘다수가 모여 하나’의 슬로건을 가진 나라로서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차별적 발언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이다. 그의 선거 슬로건은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다. 올랜도 테러 직후 ‘모두’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가 위대했던 미국의 시점을 어디로 잡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는 백인 남성의 공화당을 대변하고 있다. 다수가 모여 하나였던 시절의 다수는 유럽 각국의 백인 이민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히스패닉계과 아프리칸-아메리칸, 아시안의 이민이 늘면서 백인 머저리티가 위협받고 있다는 통계가 센서스 때 마다 나온다. 이럴 때 트럼프가 백인 남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뱉어냈다. 그들은 대선 투표율 60%의 핵심이다.
다시 테러 얘기다. 트럼프의 공세 뒤에 미국의 숱한 난제들이 깔려 있다. 그 중 트럼프가 결코 언급하지 않을 총기규제와 인종차별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민 1명당 1정 꼴로 총기는 보편적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클럽 안에 누군가 총을 갖고 있었다면 마틴의 난사를 중단시킬 수 있었을 것이란 논리를 펴는 이도 있다. 서부 활극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더 큰 문제는 차별에서 찾을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 아랍어로 통화한 아랍계 승객이 탑승을 거부당한 사례가 있다. 공항검색대는 아랍계에게는 지옥의 관문이다. 차별 금지 보다는 테러 예방이 우선이라는 국토안전부의 인식은 소속 요원들을 차별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차별적인 검색은 반감과 증오를 키운다.
9.11 이후 미국사회는 자생적인 ‘급진적 이슬람’을 양산할 수 있는 구조, 즉 아랍계 차별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 하지만 백인들은 미국 내에서 소수인종의 비율이 높아가는 현실을 반기지 않는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의 불편한 현실을 이용하고 있고 자신의 성향을 지지하는 백인들의 세를 공고히 한 후 ‘모두’를 향해 나가고 있다. ‘우리끼리 잘 살아보세’라고 웅변하고 있다. 트럼프가 세우고자 하는 ‘우리’라는 울타리는 적어도 우리같은 이민자들에겐 테러보다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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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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