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미시간 호수에 갔다. 이곳 한인들의 트렌드를 따라 아주 오래 전 북쪽 서버브로 거처를 옮긴 후 그 곳을 잊었었다. 초기 이민 시카고 한인들에게 미시간 호수는 수많은 감회를 안기는 곳이다.로렌스 길을 따라 동쪽으로 쭉 가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만나는 곳. 오른 쪽 옆길로 끼고 돌면 멀리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이 또렷한 몬트로스 하버를 만나고 왼쪽으로는 망망대해를 연상시키는 수평선이 거침없이 펼쳐져 있다.
남한 면적의 절반 크기라는 얘기, 건너편에는 미시간 주가 있고 5대호 중 유일하게 온전히 미국 영토에 포함된 호수라는 사실, 이 호수가 대서양까지 연결되어 있고 시카고는 물론 주변 2천4백만 시민들의 식수를 제공하는 원천. 미시간 호수는 마치 먼저 온 사람들의 소유인 양 자랑거리였다. 1920년대와 30년대 작곡가 현제명 선생이 이곳서 공부하며 미시간호수에서 악상이 떠올라 ‘희망의 나라로’ ‘산들바람’ ‘고향생각’ 등을 작곡했다는 전설같은 사연이 이어진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며 종이로 감싼 캔맥주를 홀짝 거리던 이도 있었고 어느 불량(?)시인은 남 몰래 호수에 대고 쉬를 하는 객기를 부렸다고도 했다. 낚시든 바베큐든 미시간 호변 나들이 때면 많은 한인을 만났다. 고인이 된 임인식 원장의 금붕어 유치원에다 주말이면 넓은 주차장에서 운전연습하는 한인이 적지 않았다.
호수 복판에는 수평선을 깨뜨리는 구조물이 하나 까만 실루엣으로 보인다. 저게 뭐냐고 묻게 되는데 제대로 대답해 준 이민 선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알아 보니 상수도 취수시설이란다.호숫가에서 2마일 떨어져 있다니까 시인의 쉬 줄기가 미치기에는 턱없어 다행이다. 2마일 취수장(Two-Mile Crib)으로 불리는 이 시설의 정식 이름은 해리슨 디버 인테이크 크립이다. 지금 보이는 이 취수시설은 1935년도부터 띄워진 것이며 여기서20피트 직경의 터널을 통해 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주말의 미시간호변은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무척 더웠다. 뛰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바베큐 자리 잡는 일행들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행렬 까지 호수에 부는 바람으로도 식힐 수 없는 사람의 열기였다. 새벽부터 드리웠을 법한 낚싯대를 챙겨 떠나는 이에게 좀 잡았냐고 말을 건넸더니 오늘은 아니란다. 낚시도 불황인가 싶어 쓰게 웃었다.
오랫동안 찾지 않은 호변이었지만 마치 고향 같았다. 처음 시카고에 와서 긴 이민생활의 작은 보따리를 풀고 큰 숨을 내쉬었던 곳, 높게 오른 태양이 미풍에도 흐트러지는 수면을 때리자 물비늘이 현란하게 춤춘다. 수천만명의 생명수가 몸 뿐 아니라 마음에 까지 스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시카고 한인사회에는 설립 54년째의 한인회와 44년차 복지회가 있다. 내 이민 역사보다 훨씬 긴 세월 한인커뮤니티를 위해 제 역할을 해 온 단체들이다. 이들 단체의 역할과 대상은 미시간호수처럼 그대로일까.
반백년 역사 속에 과거가 있고 지금이 있고 미래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여러 전직 한인회장의 걸음에서 쉽지만은 않았던 이민의 노고가 읽혀진다면 지난 주말 먼덜라인 시장 선거 출마 선언을 한 할리 김 시의원과 얼마전 한국일보 창간특집에 담긴 1.5세 리더들의 발랄함은 부모세대의 공로이자 한인사회의 밝은 미래다.
이민 초기 때 보다 잘 정돈된 호수변 방파제가 너무 인위적이어서 싫었다. 나무기둥과 바위 대신 콘크리트 계단으로 싸발려진 그 곳에서는 낚시가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세대의 전승이 무릇 소프트하게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칼럼은 필자가 4년전 썼던 것을 일부 가필 수정한 글이다. 그 때보다는 오히려 젊어진 것 같은 한인사회를 지금 느끼면서 제목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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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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