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게 한국에 여럿 있다. 줄여서 ‘시사모’라고 부른다. 일식당에서 사이드 디쉬로 나오는 열빙어와 이름이 같아 기억하기도 쉽다. 이들의 모임은 유학생 출신 단위로도 있고 지상사 근무 경험자 단위로도 있다. ‘여기 저기를 다녀봤지만 참 정이 많이 가는 곳’이란 게 서울서 가끔 만난다는 시사모 멤버들의 공통 의견이다.
시카고 한인사회가 북적였을 시절의 추억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옛얘기다. 시카고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고향 사람처럼 된다. 머문 장소와 만났던 사람이 공유되는 추억이 많다는 것은 이곳이 그리 크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울 출신끼리 고향사람 만났다고 반기는 걸 보지 못했다. 공간이, 규모가 작을수록 정은 커진다. 반비례다.
시카고라는 도시는 크지만 이곳 한인사회는 타 대도시 권역 한인사회에 비해 작다. 큰 행사라도 열리면 늘 만나는 사람들, 알지 못해도 낯이 익은 얼굴들이다. 작다는 것, 서로 잘 안다는 것, 자주 마주친다는 건 두 얼굴을 가진다. 고우면 더 곱고 미우면 더 미운 사람이 바로 ‘아는 사람’이다.
행사의 주체와 객체 대부분이 1세로 채워지는 이민사회 이벤트의 성격상 한인사회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참여인원의 양적인 증가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많은 단체들이 행사가 중복되는 걸 피하려고 신경 쓴다. 자칫 동원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골프대회 일정을 잡으려면 겹치기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묻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른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겹치면 ‘큰일’이 난다.
한국일보가 수개월 전 부터 3면에 고정으로 싣고 있는 ‘한인행사 스케줄’은 한인사회에 행사 자체를 알리는 공보효과 외에 단체나 기관의 그런 고충을 덜어주자는 의미도 함께 담겨있다. 스케줄이 나가면서 단체들이 이를 열심히 챙겨보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비슷한 행사는 서로 일정을 조율하고 되도록이면 겹치는 것을 피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꼼꼼히 챙겨보면 비슷한 행사가 몇주 간격으로 열리는 걸 스케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제대로 조율이 안됐거나 오래전 잡은 일정을 취소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눈앞의 9월부터 시카고 한인사회에 크고 작은 행사가 이어진다. 10월부터 11월로 넘어가면서 행사는 더욱 빈번해 진다. 12월, 연말은 말해 무엇하랴. 자찬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한인행사 스케줄은 그래서 더욱 유용하다.
한 매체는 10월 초로 예정되어 있던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취소했다고 했다. 이미 다른 공연들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에 과감히 행사를 접었다 한다. 이유는 ‘한인사회에 부담을 주고 누가 될까 봐’였다. 다른 단체는 비슷한 성격의 행사를 강행하기로 했다. 발표만 안했지 이미 오래전 일정이 잡혀있었다는 이유다.
어떠한 공공행사를 열든 누구도 강제할 수 없고 누구도 자유롭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곳 한인사회의 규모가 겹치는 행사를 수용하기에 턱없다는 걸 조금이라도 감안한다면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 ‘품앗이’로 통하는 단체나 기관들의 행사 돌려 참석하기 관행을 안다면 더욱 그렇다. 넉넉지 않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 의미있는 일을 벌이는데 참여가 적다면 그보다 허망한 일이 없다.
지난해 시카고의 한 합창단 공연과 한국 연예인 공연이 같은 날 열린 일이 있었다. 합창공연은 가족과 친지, 친구 만으로도 얼추 객석을 채운다. 합창단과 특별한 인연이 없던 나는 연예인 공연에 갔다. 재미있게 즐겼으나 뒷편의 객석이 텅빈 광경은 기획사는 물론 무대에 선 가수들의 기운을 빼놓았다. 공연 기획자는 합창단 공연이 겹친 걸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보다 많은 이들이 모이는 행사를 만드는 첫 작업, 한인행사 스케줄을 챙겨 보시라. 그리고 유연하게 소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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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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