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콜럼버스가 미 대륙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살았던 미국의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을 제외하면 현재 미국에 사는 모든 국민은 이민자의 자손이거나 새로 온 이민자들이다. 언어와 문화가 제각기 다른 다양한 민족의 집합체이면서 법과 질서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는 미국 사회를 어떻게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여러 이론 중 가장 두드러진 이론이 용광로 이론과 샐러드그릇 이론이다.
과거에는 미국사회를 큰 용광로라고 불렀다. 플라스틱이건 철강이건 뜨거운 용광로에 일단 들어가면 이전의 모양은 사라지고 새로운 물건으로 변한다. 세계 각지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 온 이민자들은 일단 미국에 들어와 살면 어디에서 왔건 모국의 언어, 문화, 전통을 잊어버리고 미국사회의 일원이 되어 다른 미국사람들과 똑같이 된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용광로 이론이다.
반면 근래에 와서는 샐러드그릇 론이 용광로 론보다 미국사회를 더 잘 반영한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고 있다. 샐러드 볼에 들어 있는 각종 채소와 과일은 각기 고유의 맛과 개성을 그대로 유지 하면서 다른 재료들과 조화를 이루어 맛있는 샐러드를 만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각지에 온 이민자들은 모국의 언어, 문화,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다른 민족들로 구성된 이웃과 잘 조화를 이루어 좋은 미국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샐러드그릇 론이다.
필자도 미국에서 거의 반세기를 살고 있고 그 절반인 사반세기를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지만 아직 100% 미국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미국의 주류인종인 백인과 피부색이 다르니 그들과 똑같지 않고, 외국인 억양이 있는 영어를 쓰며 어릴 적에 몸에 밴 고국의 생활 습관과 문화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한국식과 미국식 중 편리한 것을 선택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한인들과는 한국식, 일반 미국사람들과는 미국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국사람들과 지낼 때는 나이 차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이 이름 (First Name)으로 나를 불러도 그것이 편하고 또 친근감을 느낀다. 하지만 젊은 한인이 성(Last Name)을 존칭과 함께 쓰지 않고 이름을 부르면 듣기에 불편하다.
미국에서 태어났건 이민 온 1세이건 미국이란 큰 용광로에 들어가 100% 미국인이 되기는 어렵다. 그런 노력을 하는 대신 미국이라는 거대한 샐러드 볼에 들어있는 하나의 귀중한 재료로서 각자의 개성, 문화, 언어 등을 유지하면서 딴 재료들과 잘 어울려 맛있는 샐러드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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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광 / 퍼시픽스테이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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