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한지 창호가 둘러진 정자가 멀리 보이고, 아래 가장자리는 배롱꽃 같은 진홍의 작은 꽃가지가 둘러 있고, 가운데 중심으로 만개한 연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연못 사진을 아마추어 사진작가 친구가 보내왔다. 경주에 있는 서출지라는 연못인데, 신라 소지왕의 목숨을 구해 준 ‘글이 나온 못’이라는 전설이 서려 있다고 한다. 동양의 정원이 갖춰야 할 3대 요소는 아름다운 지형과 물, 그리고 식물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저수지 용도였다는 이 연못이 정원의 조건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연못에는 연꽃이 제격이다. 꽃말이 청결, 신성, 아름다움인 연꽃은 습지 식물이어서 더러운 물에서도 잘 자라지만 잎의 방수성 때문에 그 물에 젖지 않는다. 꽃송이가 크지만 몇 개의 꽃잎으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 중심을 향햐여 겹겹이 붙어 있어 우주처럼 둥글게 참 단정한 모양을 갖고 있다. 서양의 수련은 좀 다르지만, 동양 연꽃은 진흙, 곧 더러운 사바세계에 뿌리를 두고도 물들지 않고 맑은 본성을 간직할 뿐 아니라, 하늘을 향해, 즉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서 세상을 정화한다는 불교적 상징을 지니고 있다. 싯다르타 왕자가 태어나 동서남북으로 각 일곱 걸음 떼어놓을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피어났다는 전설도 있지만, 불상의 좌대가 연꽃인 것은 아마 이런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연꽃 연못을 참 좋아했다. 조선시대의 전통가옥인 강릉의 선교장에서도 활래정 곁 연꽃이 가득한 연못에 마음을 빼앗겨, 연지가 있는 정원을 갖고 싶다는, 어릴 적 꿈치고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강렬한 바람을 가졌던 적도 있다. 연못 속은, 도란도란 끝없이 솟아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신비로운 것 같기도 하고, 잠잠한 수면 아래 크고 작은 생명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아 행복한 느낌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연못을 사랑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하늘을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클로드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해서 연지가 있는 정원을 가꾸며 수백 점의 수련을 그렸던 것도, 주변 풍경과 함께 연못에 비친 하늘과 그가 사랑했던 빛을 구현하려고 했었던 것 아닐까 추측해본다. 후반기로 갈수록 수련이 떠 있는 연못의 수평선은 점점 사라지고, 캔버스 전체를 연못 자체인 것처럼 구도를 잡았던 것도, 땅 위에서 하늘을 담고 있는 물의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아니었을까!
<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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