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근검절약이 몸에 밴 탓인지 손때 묻은 물건은 쓸 만큼 쓰다가 버리는 편이다. 식구들의 속내의나 양말 같은 면 종류는 헤어지거나 구멍 난 부분을 수선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했다한들 오래가지도 않는다. 물자가 흔한 요즈음에도 해묵은 버릇은 여전해서 수선에 필요한 실과 바늘, 가위가 담긴 닳지 않는 플라스틱 반짇고리 함을 여태 달고 산다.
박물관에서나 봄직한 무거운 철제가위는 견고하기도 하지만 달그락 달그락 낭랑한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하고, 엿장수 가위소리만큼이나 정겹다. 그렇게 자랑할 만한 바느질 솜씨는 아니지만 전문가 손을 거치지 않고 바지 길이나 긴 소매, 지프 정도는 내 손에서 해결해 버리니, 모든 것이 가까이 눈에 띠는 반짇고리 덕분이다.
내 집 마련을 한 뒤 옷가지들을 보면서 구입한 앉은뱅이 재봉틀은 한동안 애지중지 사용하다 몇 번 고장 난 이후 눈에서 사라졌다. 그때 재봉틀에 끼워 사용했던 자질구레한 도구들은 반짇고리 속에서 굴러다니며 지나간 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이 어릴 적, 등교할 때쯤에야 꼭 눈에 띄는 구멍 난 양말. 출근길 남편의 양말까지도 실수 할세라 잠시 기다리게 한 다음 부랴부랴 전구를 찾아 양말 속에 끼워 넣고 구멍을 꼼꼼히 메울 때는 숙련공이 따로 없다. 새 양말을 신길 때보다 더욱 신이 나는 건 식구에게 주부의 절약정신을 양말 속에 집어넣는다는 기분이다.
미국에 와서도 동서양 체구가 달라 새 옷에 몸을 맞추려 애쓰다 보면 곤혹스런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과는 달리 세탁소 이외엔 수선할 곳이 따로 없다 보니 나의 옛날 솜씨가 발휘된다. 군소리 없이 잘 입어주는 남편은 팔다리가 짧아서 미안하다고 매번 너스레를 떤다.
미국인은 적당히 입다가 깨끗이 빨아 옷을 곱게 다려서 기부센터로 가져다주는 나름대로의 좋은 문화가 있어 세월따라 짠순이 고집에도 변화가 오는 중이다. 대체로 아이들의 옷은 생각보다 고가가 많은데, 선물용으로 구입한 옷은 다음해가 되면 훌쩍 커버려 더 이상 입힐 수가 없다. 멀쩡한 옷은 모아 두었다가 ‘굿윌(Goodwill)’이라는 상점에 아까운 생각 없이 기부하는 것은 필요로 하는 이들이 싼 가격으로 요긴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합리적인 사회인가?
아직도 나에겐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사무실용 플라스틱 제품의 반짇고리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일이다. 언젠가 포근하게 예쁜 천으로 겉을 감싼 고급스런 반짇고리 함을 본 적이 있다. 다시 한 번 눈에 아른거리는 그런 유형의 반짇고리를 발견하면 두말없이 구입해 내 곁에 두고 싶다.
지금의 반짇고리는 우리 곁에 유야무야한 소유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옛 여인네들에겐 나이롱이란 편리한 천이 없었던 시절, 옷, 이불 할 것 없이 수작업으로 씻고 시침질을 일삼던 힘든 생활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겼던 필수품이고 추억이었다.
미국 여인들은 식구의 옷을 손질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 듯 보인다. 특히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은 대체로 쓰다 버리거나 기부센터로 보내는 듯하다. ‘굿윌’에 쌓여 있는 수많은 옷가지들을 보며 굳이 반짇고리에 연연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라니. ( blog.naver.com/soon-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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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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