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써 놓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들은 듯하다. 페북과 같은 소셜미디어가 생기고 나서 ‘친구가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과 같다’고 하고, 그전에도 ‘애인이 너무 많으면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는 뒷마당에 심어놓은 과일수를 보며 이 말을 상기한다. 내 뒷마당의 사과나무는 봄이면 하얀 꽃을 나무 가득히 피우고 꽃이 지면 점 알 같은 열매가 온 가지에 달린다. 하지만, 수많은 열매는 새끼손톱만큼 자랄 뿐 단 하나도 먹음직스런 큰 사과로 자란 적이 없다.
지난 5월 나는 금융시장에서 블록체인, 인공지능 등을 이용하는 업무를 하는 관게로 ‘한국 핀테크 위크’ 행사에 연사로 한국을 다녀왔다. 비슷한 시기에 혁신 관련 정책의 효율성 연구를 위해 한국에 출장을 다녀온 팀원 중 한국인과 며칠 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핀테크 위크 행사 때 성공적인 핀테크 기업의 사례 발표를 보니 모두 한국 내에서 투자를 받지 못해 해외에서 투자를 받았던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자본을 사업아이디어에 연결하는 자본시장이 기능을 못 해서인가요, 정책지원이 부족한가요? ” 내가 그 연구원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2주간 머물며 혁신 관련 정책 및 지원을 한다는 수십 개의 정부 및 공공기관, 단체를 만나고 온 그는 말했다. “부족하다뇨. 제가 볼 땐 너무 많아서 문제예요. 각 기관과 단체마다 모두 너무 열심인데, 정보량은 너무 많고 교통정리가 안 돼서 거의 마비 상태인 거죠.” 같이 대화를 나누던 한국 정부에서 파견 나온 두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하나가 말했다. “하기는, 저희도 이 기관에 파견나와 있지만 각자 다른 한국 정부 부처에서 나와서 각각의 부처에 따로 보고드릴 뿐 이 한 기관 내에서조차 여러 한국부처에서 나온 분들과 연계가 안 되니까요.”
우연히도, 같은 날 점심때 은퇴 후 탈북자들 중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때 3주간 미국 연수를 인솔하는 분과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민족으로서 통일을 준비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탈북자들의 세계정세에 대한 안목과 경험을 넓히려는 취지로 지난 십여년 간 이어왔는데, 그 지원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고 물었다. “이곳에서는 지원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한국엔 민간단체들이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자원과 프로그램들이 엄청 많아요. 너무 많은데 서로 연계가 안 돼서, 정보력 있고 약삭빠른 사람들은 악용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어찌 보면 한국인들에게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 독립운동을 찾아보면 100여개의 단체가 나오지만, 한국인은 스스로 독립을 이루지 못하였다. 감수성 예민한 고등학교 시절, 님 웨일즈가 남긴 독립운동가 김산의 전기 ‘아리랑’을 읽고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독립단체들이 모략하고 권력 투쟁하며 서로 죽이고.. 결국 권모술수에 능한 두 지도자, 이승만과 김일성이 외세에 의해 쪼개진 두 나라의 수장이 되어 남한과 북한은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도 같은 모습을 반복한다.
몇 해 전 과수원에서 자란 경험이 있는 한 분이 내 사과나무를 보고 말했었다. “봄에 작은 열매들이 가득 달렸을 때 많이 솎아주어야 해요. 이렇게 많이 달려있으면 어느 것도 크게 자랄 수가 없으니까요.” 이 지혜의 말을 들은 후에도 나는 어떻게 솎아내어야 할지 몰라 매년 그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뒷마당에 나가 사과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마른 잎가지와 열매를 몇 개 걷어내고는 돌아설 뿐이다.
햇살 좋은 유월 주말 아침, 나는 뒷마당 사과나무 앞에 그저 이렇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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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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