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 TV 프로그램에서 파란 눈의 한국인 인요한 박사가 45년 전 헤어진 친구를 찾는 사연이 소개되었다. 인 박사는 지금 연세의대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재직 중이며 한국형 구급차를 최초 개발하여 보급한 인물이다. 그는 환갑의 나이로 출연해 죽마고우 이중복을 찾아달라며 “보고 싶어 죽갔네.”라는 사투리로 진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그는 외증조부 유진벨 선교사때부터 130년간 4대째 한국을 위해 일한 집안 내력으로 전라도 순천 토박이로 자랐다. 인요한 박사는 “쨘이”로 불렸다. 영어의 John을 순천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그렇게 불렀다. 5살 무렵, 처음으로 이웃집에 살던 이중복과 친구가 되었다. 둘은 겨울엔 온돌방 아랫목에서 뒹굴고 밖에서 불도 지피고, 여름에는 물놀이와 서리를 하며 개구쟁이 시절을 보냈다. 그는 15살 때 선교사인 부모의 안식년을 맞아 가족 모두와 미국으로 갔다가 이듬해 순천으로 다시 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이중복은 이사를 간 상태였고 이후 지금껏 사방으로 그를 수소문해봤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결국 방송국의 여러 노력 끝에 친구 이중복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전화통화에 “인요한이란 사람은 모르는데요.”라고 했던 이중복에게 ”쨘이는 아세요?”라고 물으니 “걔는 알아요.”라는 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그들은 순천역 플랫폼에서 45년 만에 재회를 했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던 인요한 박사는 멀리서 걸어오는 노신사를 기억을 가다듬어 쳐다보았다. 중복씨가 “쨘이야!” 하고 부르자 어린아이처럼 “응!” 하며 다가가 두 손을 맞잡고 서로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인박사는 “여태 어디 있었어?”라고 묻다가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하며 스스로 답하고 이중복을 끌어안았다. 몇 시간 전 국밥과 수육을 먹으며 “돼지고기 한 점에 새우젓을 찍어먹는 이 맛을 모르고 죽는 외국인이 불쌍하다.”며 능청을 떨어대던 유쾌한 성격의 그도 중복을 만나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동안의 그리움이 몇 마디의 말속에 고스란히 전해져 내 마음도 짜르르 했다.
그즈음 40년지기인 희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여름에 3주간 뉴저지에 있는 사촌 언니를 방문할 것이라며 그때 만나자고 했다. 내가 2년 전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그녀가 남편 근무지인 일본에 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소식에 벌써부터 흥분이 되었다.
희성이와 내가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입학식 때였다. 왼쪽 가슴에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고 운동장에 줄을 서는데 키가 비슷했던 나와 희성일 두고 엄마들끼리 인사를 트더니 “친하게 지내라.”며 앞뒤로 세웠다. 그 날이후 우리는 학교에서도 늘 붙어 있게 되었고 집도 골목 하나 사이로 가까웠기 때문에 등하교도 같이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친구의 간섭이 싫어지고 귀찮아졌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5학년 1학기가 끝나고 희성이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갑작스런 그 친구의 전학 소식이 들려오던 날도 슬프거나 아쉽거나 하지 않았었다. 그 아이가 없어지면 홀가분하고 자유스러울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마 처음 맞는 이별에 대해 무지했던 것 같다.
희성이가 없었던 5학년 2학기는 허전하고 쓸쓸했고 먹먹하고 슬펐다. 곁에 있을 때는 몰랐던 그 아이와의 따뜻하고 즐거웠던 추억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리워졌다. 우리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편지를 썼다. 곁에 있을 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그 속에 담았었다. 우리는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응원하며 성장했고 서로의 인생을 지켜봐주었다. 몇 년 만에 찾아가 불쑥 얼굴을 내밀어도 어제 만난 듯 편안하게 나를 맞아주는 그 친구를 얼마 후 미국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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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숙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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