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의사를 만났더니 혈압이 떨어졌고 심장박동이 불규칙하다고 그 옆의 페어옥스 (Fair Oaks) 병원 응급실로 나를 보냈다. 거기 응급실에서 나는 사라(Sarah)라는 예쁜 아가씨를 만났다.
단번에 피를 뽑고나서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래 한국인이야” 답했더니 반가워한다. 아침 11시에 응급실에 들어가 저녁 7시 입원할 때까지 사라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결국 입원수속을 받고 병실에 올라갔더니 독방이 아니라 이미 미국 노인이 한 분 있었다.
두 명의 간호사가 거의 5분 간격으로 그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그 분위기에서 나는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내 담당 간호사에게 독방으로 옮겨 달라고 청했다.
제니(Jenny)라는 아가씨는 두 시간 후에 독방이 나왔다고 나를 옮겨주며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시아 출신의 의사, 간호사, 테크니션들이 많아서 바로 한국인이냐고 묻기 어려웠다고 하면서 내년 가을에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내년 봄에는 꼭 한국에 다녀오고 싶다고 고백했다.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는지 묻는다. 미국태생이 아니고 미국에 공부하러 와서 주저 앉은 경우라고 답했더니 영어가 능숙해서 한국인이 아닌 줄 알았다고 웃는다.
제니가 거기 없었다면 나는 그날 밤 한 잠도 못자고, 그로 인해 혈압은 더 오르고 심장박동은 더 불규칙하게 뛰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독방을 마련해주어서 고맙다고 전했다.
밤 11시에 그녀는 내 발과 발목에 마사지 장치를 달아주었다. 키모 치료로 발바닥이 무감각 상태인지라 병실 침대에 있는 시간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내가 처음 그런 마사지 장치 혜택을 받았다.
병원에서 한인 의사, 간호원, 테크니션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의학용어가 생소한데다 영어 표현이 정확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 한국어를 알아듣는 1.5세대 의사, 간호사, 테크니션을 만나면 반갑다. 그들은 모두 능숙한 전문인들이다.
페어팩스 병원에서는 한국계 의사나 간호사를 만난 적이 없는데 페어옥스 병원에 가면 한인 의료진을 만날 수 있어서 그 병원에 정이 간다.
1960년대 한국 유학생 시절 시카고 거리에서 한국어가 들렸을 때 느꼈던 반가움 이상의 반가움이 병원에 있다.
정맥에서 피를 뽑는 일은 내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능숙한 한국 테크니션이나 간호사는 내게 행운이다.
고통스러운 병원에서 동족을 만나고 한국어로 의사 소통이 되는 간호사를 만나면 위로를 받는다.
나는 응급실로 실려갈 때가 생기면 페어옥스 병원으로 가려고 한다. 그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페어팩스 병원 의료진들보다 더 마음의 여유가 있어 보였다.
지난 8월 두 번이나 페어팩스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서 나는 제대로 피를 뽑을 수 없는 테크니션을 만나 두 번, 세 번 고통스러운 관문을 지나야 했고 환자가 많아서인지, 응급실 복도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
병실에 가서도 피를 뽑는 태크니션을 만난 적이 있다. 새벽 3시에 겨우 잠든 나를 깨워서 피를 뽑던 테크니션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으니 내 고통을 지옥에 비유할만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어느 병원으로 가겠느냐고 911 소방구급요원이 물으면 페어팩스 병원이라고 대답했었다.
다시 응급실로 가야 할 일이 없길 바라지만 다음엔 페어옥스라고 말하리라.
거기 가면 동족의 따뜻한 간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1.5세대 젊은이 몸 속에 동족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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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홍 / 시인,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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