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친정집으로 휴가를 떠나는 며느리가 인사차 들렀다.
화초가 담긴 화분 하나 들고 와서 “어머니, 얘가 아픈가 봐요 좀 맡아 주세요” 라고 한다.
빈 집 지키며 시들어 갈 화초 가엾다고 데리고 온 그 마음이 한없이 곱게 여겨진다.
맑은 물 흠뻑 적셔 주고 힘 빠진 누런 등줄기에 버팀목 세워 햇살 가득한 창가에 올려놓고 영양제까지 꼽아주었다. 한 이틀 지나니 언제 아팠더냐 하듯 활짝 날개 편 잎새들이 고마웠다.
토요일이면 맨하탄 타임스 스퀘어로 복음전도를 나간다. 직장 은퇴 후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인 것이다. 팬데믹 기간의 후유증으로 조금은 헐거워진 광장 그러나 북적거림은 여전하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몫 보려는 광대(?)들은 찌는 더위에도 다양한 유명 캐릭터로 얼굴까지 덮고 여행자들의 눈길을 쫓는다.
상가 모퉁이에는 바짝 마른 체구 전신에 금색가루를 뿌린 숨쉬는 동상이 눈동자도 굳어버린 듯 꼼짝 않고 서있다.
구경꾼이 그 앞 바스켓 속에 몇 잎 떨구자 마치 잠에서 깬 듯 황색이 드러내고 Love Sign 까지 던지며 춤을 춘다. 군중들의 흥겨운 모습에 삐에로도 마냥 행복해 보인다.
하얀 대낮에도 하늘 가린 다색의 전광판들이 번쩍거리며 사치심을 유혹하는 화려한 거리, 홈레스들의 낡디낡아 색바랜 사연들이 그 아래 즐비하다.
그 모습들과 첫 만남의 안타까운 연민은 이제 익숙해져 그저 스쳐 갈 수 밖에 없는 나의 한계를 느끼며 다만 부족한 가운데 덜 아파 할 마음의 평화만을 빌어 줄 뿐이다.
팬데믹 기간의 고통을 겪은 탓일까, 이전 보다 넓어진 도시인들의 마음판이 느껴진다. 날로 힘들어져 가는 세상 가운데 선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선함으로 우뚝 선 버팀목이 필요하리라.
허드슨 강은 오늘도 부와 빈이 어우러져 출렁이며 흐르고 있다. 이 모습 이대로 정들어 가는 도시, 내 나라도 남의 나라도 아닌 우리 모두가 잠시 머무는 곳, 영원한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그 어떠한 풍파에도 견딜 수 있는 메시지를 꼭 전할 것이다. 동행자인 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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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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