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성조기가 펄럭이는 대로변의 맥도날드 가게를 바라보며 오늘따라 빅맥 생각이 불현듯 나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40번 도로를 지날 때마다 이곳을 통과하게 되지만, 그동안 건강을 생각하여 맥도날드 간판을 마치 돌보듯이 보고 지나쳤었다.
오늘따라 정오쯤이라 시장기가 발동했나 보다. 빅맥 두 개와 진한 맥카페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집으로 와서, 남편과 커피 반 잔씩 나누어 약간의 우유와 뜨거운 물을 섞어 따끈하게 만든 커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얼마만인가 헤아려 보니 안 먹어 본지 일 년도 넘는 빅맥을 옛 친구 만난 듯 반기며 먹고 있자니 포만감에 행복이 절로 밀려온다.
뉴욕 맨해튼은 나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던 도시이다. 미국에 첫 발을 내디딘 곳이기도 하지만 꿈과 낭만으로 웃고 울며 뉴요커로 생활했던 한때의 젊은 시절. 어느 날 남편과 시내 볼일을 마치고 난 뒤 모처럼 근사한 식사를 한답시고 4.5.6이라는 간판이 달린 중국식당을 찾았다. 한국과는 달리 이름조차 생소한 음식을 먹고 느끼한 속을 달래며 나온 뒤, 뒤늦게 예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분실한 것을 알고는 다시 그 식당을 찾았지만 시계는 종적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소중한 물건을 분실한 뒤 새로 시계를 구입하기까지 중국식당이란 말만 들어도 한동안 잃어버린 시계에 대한 아쉬움에 시달리곤 하였다.
같은 동양권이라도 일본음식은 간편하면서도 맛이 담백하다. 김으로 두루마리 한 다양한 생선 초밥류의 스시와 시원한 우동국물과는 궁합이 맞는 반면, 기름기 투성이인 중국음식은 오래 전에 중국 장가계 지방을 여행 할 때도 식사 때 마다 무엇을 먹을까 곤혹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이태리 요리는 대체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지형학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반도라서 그런지 음식뿐 아니라 가족적인 분위기도,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이태리 식당에 가면 밀가루로 빚은 얇은 크러스트 위에 야채를 듬뿍 올린 야채피자랑, 이곳 유명 브랜드인 ‘스리 브라더스’에서 파는 베지 칼조네스 등 선호하는 메뉴들이 차고 넘친다.
보스턴의 뒷골목 ‘리틀 이태리’에서 이태리 음식을 시식한 후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음식점(1826년 개업) 유니언 오이스터 하우스(Ye Olde Union Oyster House)를 찾았다.
그곳의 명물인 가재요리와 크랩케이크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무려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자리를 잡은 뒤라 눈과 입을 호강시킨 별미이긴 하였다. 그러나 음식 맛을 떠나서 JFK를 비롯해 프랭크 시나트라 등 이 곳을 찾은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사면 벽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먼 옛날이야기이지만 아일랜드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웨일즈의 홀리헤드 항구에서 배를 타고 더블린에 도착, 다시 기차를 타고 아일랜드의 최서단 골웨이에서 생전 처음 맛 본 피시 앤드 칩스의 연하고 고소한 생선튀김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란. 아마 그때가 한국에서는 88올림픽이 열려 그 가게 안에서 TV로 생중계하는 것을 보았으니 더욱 기억에 새롭다. 서빙하는 아이리시 아주머니가 한국인은 처음이라면서 반가워하기에 때맞추어 가지고 있던 작은 호돌이 인형을 선뜻 선물한 기억 역시 되살아난다.
그뿐인가, 프랑스 관광 끝에 파리의 위성도시 라데팡스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아침 출근길의 파리지앙. 얼굴보다 더 큰 소보로 빵을 들어 보이며 이방인인 우리를 보고 활짝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던 활기찬 그녀의 모습, 그러나 파리 여행 중 먹었던 음식이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 것은 파리 상젤리제 거리에서 눈에 띠어 급히 찾아 들어간 레스토랑이 겨우 맥도날도 가게였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먹거리도 그 나라의 얼굴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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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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