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러하듯이 우리는 살아오다보면 서서히 자신이 노년의 가파른 끝자락에 다달았음을 깨닫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늙어갈 수밖에 없는 세월앞에 느껴지는 불안과 막막함이 때로는 노년의 질을 나락으로 떨어 뜨릴까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의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크고 작은 도전을 과감히 실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활력소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남은 인생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요 숙제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아담한 찻집이 있다. 이름하여 ‘낭만의 찻집’, 이유인즉 이곳에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백발의 70대 후반 백인 한쌍이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기라도 한둣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게된다. 마치 50-60년대 영화에서나 있음직한 로맨스. 그레이의 한 장면을 연상케한다. 찻집의 실내 공간은 특별한 장식으로 시선을 끌지는 못해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젊은 날을 추억하게 하는 편안한 분위기 탓이다. 이곳에 오면 낯익은 얼굴을 자주 만나게 된다. 반가워서 서로 안부를 묻고 슬그머니 테이블 위에 쿠키 몇 조각을 올려주고 가는 이도 있고, 때로는 잊고 지낸 오래된 지인 중에는 담소하는 우리 곁에 와서 살며시 얼굴만한 모카빵을 내 손에 쥐어주고 간다.
그런가하면, 오밀조밀 달달한 케이크와 음료수를 앞에 놓고 20-30대의 젊은이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다는 이 찻집의 온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얼마전 지인과 함께 주일 미사를 드리고 식사후 이 낭만의 찻집에 들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느닷없이 누군가 우리 차 번호를 종이에 써서 차 주인을 찾는다,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하다 우리 차 문을 치고 지나쳤음을 감지하고 정차해서 보니 길게 흠집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 주인을 찾았노라고 한다. 흔히 눈 딱 감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중년을 넘은 초로의 여성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예사로운 분이 아니었다.
그 분은 연로하고 몸이 불편하신 시댁과 친정 양가의 어머님을 오랫동안 모시고 살면서도, 시간을 쪼개어 거리의 노숙자를 위한 식사를 제공하는 일에 동참하는, 교회의 봉사활동이 몸에 배인 듯 한 성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날도 볼티모어 다운타운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동료들과 함께 차 한잔으로 피로를 풀기위해 ‘낭만의 찻집’을 찾은 것이 이런 변을 가져왔노라며 거듭 사과를 한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우리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보다 더한 의로운 일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낭만의 찻집을 떠나는 내 마음을 한층 더 밝게 만들어 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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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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