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여인이 인슐린 과용으로 자살기도를 했다가 실패하여 응급실에 실려와 회생되고서, 억지를 부린 사건이 있었다. 자살기도 후의 상태는 위독한 상황이라서 약간의 오차가 있었어도 이 여인은 죽었을 것인데 내과 의사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잘 협력하여 살려냈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자신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들을 상대로 고소를 한 것이었다. 환자는 그렇다고 해도 거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고소를 받아주는 사회제도에도 어쩌면 책임이 있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여인은 반 혼수상태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혈관주사도 꽂혀 있고 병원 침대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다칠 수도 있고 하여 침대 네 귀퉁이에 사지를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바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일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이 환자는 퇴원하자마자 양 손목의 멍자국을 사진 찍어놓고 사진까지 첨부하며 용의주도하게 고소를 해왔다. 환자의 주장인 즉은 필요 없는 사지결박으로 자신의 팔목에 멍이 들게 하고 고통을 주었고 환자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었다.
병원 변호사와의 첫 만남에서 나는 강조했다. 내 시간이 좀 많이 들더라도 이런 경우 없는 고소를 하는 버릇은 고쳐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과 응급실과 정신과 응급실을 오가며 치료받고, 정신병동에 3일간 입원했으니 차트는 책 한권이 족히 되었다. 이 차트를 철저히 읽고 방어 준비를 했다. 멀쩡히 잘 지내는 사람을 병원에 강제로 끌고 온 것도 아니고, 더구나 의사와 간호사 말대로 치료 잘 받는 사람을 묶어 놓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기도한 자살이었고, 그 결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었다.
조그마한 오차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건져낸 것은 의사로서는 상당히 자랑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재판 전에 하는 선서증언에서 반나절이나 소모하며 답변을 했는데, 나뿐 아니라 수년전 이 환자를 돌보았던 수련의도 불려오고 간호사도, 내과 의사도 줄줄이 불려서 증언을 했다. 증언이 다 끝나고 나오면서 변호사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절대 합의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가서 다시는 이런 넌센스가 생기지 않도록 본을 보여야 한다고….
한 두어 달이 지나서야 변호사에게 편지가 왔는데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을 비롯한 많은 병원 의사들이 잘 협조해서 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변호할 수 있게 됨을 감사한다.”그리고 이 사건은 병원서 5,000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고소취하로 해결했다고 덧붙였다. 끝까지 밀고 가서 병원과 의사들이 과실이 없다는 결론을 얻어내려면 정식 재판과정까지 가야하고 그러자면 몇 달이 더 걸려 몇 만달러의 변호사 비용이 더 드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5,000달러의 합의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런 모든 일을 돈이라는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미국의 풍조가 문제인 것 같았다. 돈이 더 들어가느냐 아니냐의 관점에서 판단하기보다는 돈이 좀 들어가더라도, 이런 일은 원칙 준수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이런 사기성 고소 풍조가 사라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돈 얼마나 아끼느냐 보다도 돈이 좀 들더라도 얼마나 올바른 방향으로 문제를 접근하느냐, 즉 원칙을 고수해야 할 일이었다. 말도 안되는 사건을 갖고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에게 귀찮아서 던져준 돈이 작은 돈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들이 다음의 사건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사회의 가치관이 퇴화하게 마련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