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엔 똑똑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고맙고 친절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라는 아브라함 헤셀의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날이 갈수록 동감이 가는 말이다.
얼마 전 집을 팔아 달라고 부탁하고는 라스베가스로 남편 따라 이사간 향인에게서 자그마한 소포가 왔다. 토요일에 사무실로 도착한 소포는 그 날 밤 11시나 되어서나 열어 볼 수 있었다. 낮에 읽어보는 편지나 열어 보는 소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깊은 밤, 아무도 없는 회사 사무실에서 깊숙이 의자에 몸을 던지고 정겨운 편지를 읽었을 때의 기분이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더 더욱 편지의 내용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향인과 나는 여러 번 만나 보지 못한 사이다. 서 너 번 만나 보았을까. 그저 아는 것이라면 남편을 로마인지 비엔나에서인지 아니면 런던에서 만나 연애 결혼하고 미국으로 들어왔다는 것. 바순을 연주하는 음악인이라는 것. 또 있다면 몇 달 전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가 미국에 있는 향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자, 남편에게 아무 말도 않고 무작정 비행기 타고 딸을 보러 오신 씩씩한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
이러한 향인은 나에게 유모 있게도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집 그림을 그려 화살표를 하고는 "이것을 팔아 주시느라 수고해 주신데 감사 드리고 더욱이 좋은 가격에 잘 팔아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로 시작한 편지에는 동충하초 한 병을 함께 보낸다고 하였다. "이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면서 가로 안에 ‘약 장수 말투’ 라고 써 놓고는 이 회사 제품은 천연 약초를 특허 공법으로 만들어 임상 실험을 통해...약효는 활력과 체력의 증진, 신체 활력, 지치고 피곤함 해소, 스테미나 증가, 폐 기능의 향상... 등입니다." 아무튼 먹으면 좋다는 것이었다. 향인도 먹고 있고 약이라면 다 독약으로 알고있는 그녀의 남편도 먹고 있다는 것이다. 힘이 저절로 난다면서 꼭 먹어 보라고 보내 준 편지와 동충하초 한 병이었다.
밤이 11시가 훨씬 넘어가는데도 한동안 사무실에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그녀의 고운 마음에 감동한 것이었다. 더구나 요즘의 나는 신체적으로 예전보다 좀 피곤해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고맙고 친절한 그녀에 대한 마음은 싶게 가라앉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 향인에게 전화를 하였다. 너무 고맙게 잘 받았노라고. "그리고 생각 해준 그 마음에 나는 너무 감격했어요. 울 번했어요" 했다. 조그만걸 가지고 뭘 그러냐 기에 "몸이 아파서 골골하고 있는 아내가 몸이 아프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약 사 먹어 한 남편도 있겠고, 못 들은 척하는 남편도 있겠지만 아무 말 없이 사라진 남편이 돌아와 내 밀은 약 한 병... 저 그런 기분이었어요" 했다.
꼭 라스베가스에 와 방문해 주는 걸로 알고 기린처럼 목 빼고 기다리고 있겠다면서 편지를 끝맺은 향인에게 편지와 동충하초를 받은 후로 전화를 자주 하지 못했다. 바쁘다는 것은 그저 핑계였다. 전화를 자주하면 행여 그녀에 대한 고마움에 때가 묻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친절이 전염이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향인으로부터 받은 고마움은 이상하게도 나를 친절한, 상냥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듯 싶다.
오늘 아침에는 몇 몇 이웃들에게 어떻게 지내고 계시냐 면서 친절히 안부 전화도 하고, 함께 전화선을 오고가며 잘도 자라고 있는 아이들 얘기도 하고 날씨 얘기도 하고 나의 웃기는 얘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기막힌 얘기도 듣기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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