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이름 없는 민초들이 묻혀사는 이 마을에도 시대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대를 물려가며 자연 속에 숨쉬며 살아온 그들에게는 우리 이민자들은 분명 외부로부터 침입해 들어온 ‘외래인’일 수 밖에 없다. 비록 우리가 30여년을 그들 사이에서 살아왔다 한들 남북전쟁(1861∼1865)이전부터 자리잡고 살아온 그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외래인일 수밖에 없다.
이 외래인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9·11 사태 이후로 이 시골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특별히 꼬집어 이렇다할 변화는 아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졌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과 같은 것이다.
며칠전 이런 일이 있었다. 낯선 젊은이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여러해 동안 같은 질문에 시달려왔던 터라 진력이 난 나는 되레 그에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온줄 아느냐. Japan? China? 둘다 틀렸다. 나는 Korean이다. 이런 대화는 과거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South Korean이냐, North Korean이냐?
이전에는 코리언이라고 하면, 가령 내 삼촌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는데 겨울에 추워서 혼이 났다는 등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Korea라고 출신국을 밝힌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젊은이의 말이 이어졌다. N. Korea는 나쁘다(bad), S. korea는 좋다(good). 단순 소박하다 못해 어이없는 소리에 실소를 감추려는데 어느새 엿들었는지 중년남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S. Korea라고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반미시위하는 것 보지 않았느냐.
TV의 위력은 이 마을 구석구석에까지 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외국여행은 커녕 미국 남부지방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는 시골사람들도 분명히, 말하자면 미주류사회의 일부를 차지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지난번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서 로이 반스에 반대해서 소니 퍼듀 후보에 지지표를 던진 레드 넥(남부 시골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반스 전지사가 주기(state flag)를 바꾸기로 결정했다는데 반감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우리 외래인이 레드 넥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비쳐질까. 비록 주류사회 정치·문화의 중심에 서있지 않다 해도 시골 한구석에서나마 할 일이 있지 않겠는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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