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라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대답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떠나신지 벌써 십삼년째 된다. 일하며 아이들 돌보느라고 바삐 지냈다고 하더라도 그 긴 세월 동안 어머니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전화를 받고 서둘러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는 도착 전날 이미 떠나셨던 것이다. 떠나시는 순간까지도 남은 힘을 다하여 눈을 뜨시고 문 쪽을 바라보시더라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이제는 오는 지 기다리셨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어줍잖은 아들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기다리셨단 말인가.
언젠가 하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족보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가 있다면서 할머니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래서 엄마가 할머니는 두 분이셨는데 한 분은 친할머니이고 또 한 분은 외할머니라고 일러주면서 친할머니는 아빠의 어머니이고 외할머니는 엄마의 어머니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듣고 돌아섰는데, 그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으니 무슨 감정이 있었겠는가.
할머니가 조금 더 계셨던지 아이들이 조금 빨리 태어났던지 했으면 일은 달랐을 것이다. 하기사 결혼 이십년만에 아들 둘이 태어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사불여의라는 말을 했던가.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이 없는데 대해 달리 말씀이 없으셨다. 나중 들은 얘기지만 며느리에게는 다른 생각 말고 몸성히 잘 지내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먼저 떠나셨고 내 동생 정자도 일찍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어머니는 홀로 몇십년 자식을 기르시며 사셨다. 아버지, 할머니, 정자는 다 한곳에서 쉬고 있으나 어머니는 혼자 다른 곳에서 잠드셨다. 선산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가셔도 어머니만 여전히 혼자 계시는 듯한 생각이 들면 마음이 찡하다.
어머니날은 와서 가고, 가면 다시 오지만 카드 한 장, 전화 한 통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으니 나는 고아가 된 셈이다. 내가 천년을 산들 어머니에겐 언제나 어린아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올해 어머니날은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과 겹쳐져 그런지 유독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이승의 장막이 걷히고 영생의 나라에 가면 어머니를 만나 뵈리라. 정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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