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로 향하는 여행사 관광버스가 올림픽 가의 한 마켓 주차장 앞에서 문을 열어둔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신효섭 기자>
외로워, 공짠데, 혹시나
돌아올땐 생활비 6백달러 잃고 한숨 푹푹
26일 오후 12시10분. 한남체인 옆 도로에 관광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길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서성이던 중년 남성이 기다렸다는 듯 버스에 올라탄다. 여행사 직원인 듯한 여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손님을 맞는다. 버스 앞 창문에는 ‘Pechanga’(페창가)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카지노로 매일같이 달리는 버스다. 이날 대박의 꿈을 싣고 달리는 버스 일명‘카지노 버스’에 동행했다.
갈곳 없는 노인들
싸잡아 비난은 무리
50~60대 여성 주류
일부 노인 “저축한 돈 다 날렸다”
“오늘이 내 생일이야. 10여년 전 이혼하고 혼자 살아. 아침은 이웃 부부가 초대해서 생일상 받았는데 저녁은 만날 사람도 없고 해서… 카지노나 가려고.”
버스에서 만난 정모(69)씨. 그는 이번 카지노 방문이 네 번째다. 도박이 좋아서가 아니다. 노인 아파트에 혼자 있기가 싫어서다. 자식이 셋 있지만 모두 이혼한 부인과 함께 산다.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딸과는 가끔 전화 통화하는 정도다. 9년 전 앓은 중풍으로 다리가 불편하고 한 쪽 귀도 잘 들리지 않지만 적적한 마음에 카지노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는 설명이다.
혼자 버스에 올라타는 할머니는 카지노 단골인 듯 여행사 직원과 반가이 인사를 나눈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세요? 한국 가신 줄 알았어요”라는 인사에 “가긴 어딜가? 돈 받을 게 있어서 못 가. 한국에 가족 다 두고 나 혼자 뭐하고 있는 건지?”라며 푸념이다. “빨리 일 잘 해결하고 한국 가셔서 여행이나 다니면서 사세요”란 직원의 덕담이 싫지 않은 눈치다.
카지노 행 버스에는 의외(?)로 노년층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50∼60대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인종별로도 라틴계와 흑인이 가끔 섞여 있을 뿐 90% 이상은 한인들이다.
이 같은 이유는 일을 놓은 한인 노년층들이 현실적으로 갈 곳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혹은 부부가 집을 지키고 있느니 버스를 두어 시간 타고 당일치기로 카지노를 갔다 오는 것이 훨씬 좋다는 판단이다.
금전적 측면도 강하다. 카지노행 버스는 단돈 2달러면 이용이 가능하다. 버스기사는 출발 직전 생수 한 통도 나눠준다. 두 통을 집어도 별 말이 없다. 호텔에 도착하면 카지노 측에서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한 5달러 짜리 쿠폰도 주니 버스에 오른 것만으로도 3달러를 버는 셈이다.
한인타운에 산다는 한 할아버지는 “포커를 하는 데는 별로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승률도 50% 정도여서 포커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으면 따는 것은 몰라도 돈을 잃지도 않는다”며 “슬롯머신밖에 할 줄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주로 돈을 잃는다. 나 같은 경우는 따지도 잃지도 않으면서 하루 온종일 카지노에서 놀고는 한다”고 말했다.
물론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최모 할머니(62)는 “한 달에 웰페어로 1000달러 내외를 받는다. 평소에는 200달러 집 값으로 내고 생활비를 쓰면서도 조금씩 돈을 모았는데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에 손을 댄 뒤로는 저축한 돈마저 다 날렸다. 오늘만 600달러를 잃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카지노에서 만난 한 한인 남성도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포커 토너먼트가 열린다. 100여 달러를 내고 시합을 펼쳐 우승을 하면 4만 달러 정도를 벌 수 있다. 오늘 연습도 좀 하고 숙박 문제도 알아보기 위해 카지노를 찾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버스에서 만난 한인들은 대부분 도박이 아니라 잠시 즐기기 위해 카지노를 찾은 모습이었다. 8시 30분에 LA로 돌아가는 버스가 출발하건만 일부 한인들은 7시가 조금 넘자 호텔 입구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드디어 카지노를 떠날 시간.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은 얼굴 표정에 그날의 성적표가 쓰여 있다. “백불 정도 잃었어” “괜찮아 그 정도는” “오늘 뭐 했어?” “처음인데 아나 그냥 했지” 단체로 카지노를 찾은 아주머니들의 얼굴에서는 아쉬운 표정이 남는다.
레이크우드에서 버스를 탔던 한 흑인 여성은 아예 콧노래에 어깨춤을 추며 버스에 오른다. 700달러를 땄다는 설명이다. 한인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부러움과 아쉬움의 한숨이 동시에 터진다. 버스기사는 “10만 달러 잭팟이 터지고 버스에 타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며 아쉬움을 더하지만 이날 별다른 ‘이변(?)’ 없이 카지노 여행은 끝이 났다.
<박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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