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설목사(청암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이웃이란 말은 본질상 다원성에 기초되어 있다. 인간인 우리는 그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결코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이라는 말도 서로 다름을 전제하고 있는 말이다. 서로 간에 다름을 인식하는 일이야 말로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더불어 사는 첩경이 된다. 다름은 단지 차이일 뿐이지 차별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 우리는 동일성에만 너무 길들여져 있다. 나하고 다르거나 우리와 다르면 곧 적으로 간주되어 공격하기 일 수다. 우리의 다름을 너희를 향한 차별로 처리하는 한 이웃으로 사는 길은 우리 속에서 차단당하고 만다. 그래서 다원성 속의 통일성을 존중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흔히 우리는 하나만 잡고 다른 하나는 버리는데 익숙하다. 그래야 잡은 하나에 충실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충분치 못한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버릴 것이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요 삶이다. 이 말은 회색이 되자는 것도 아니요, 욕심쟁이가 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편견과 독선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옛날 황의 정승 이야기 가운데 이런 말이 전해진다. 두 하인이 서로 옳다고 주장하며 다투다가 정승을 찾아갔다. 하나가 먼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자 정승은 “네 말이 옳도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다른 하나가 나서서 자신의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하지 않는 것인가? 이것을 보고 있던 부인이 참다못해서 이렇게 따져 물었다. “정승께서는 이 사람도 옳고, 저 사람도 옳다고 하니 도대체 그런 어불성설이 어디 있소!” 그러나 정승은 이번에도 “당신 말도 옳소!”하고 답했다. 무슨 소리일까? 황의 정승은 다툼이나 분란이 아니라 화쟁을 본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상극이 아니라 상생을 찾은 것이리라. 정치 이데올르기 마저 사라진 지가 오래 되었지만, 우리의 세계는 아직도 어지럽다.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인종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종파와 계파 간의 다툼도 만만치 않다. 지금 우리에게 좀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사실 지구촌락이라는 말을 단지 거대 국가론에 기초한 소수자 삼키기로만 해석하는 것은 상당한 왜곡이다. 이웃으로 산다는 것은 사물의 본 모습인 동시에 모험이다.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이 있다. 구멍이 뚫린 문풍지를 살며시 비비고 햇볕이 방 안을 환히 비출라치면, 어김없이 난 내 손바닥에 햇살을 잡아 담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잡혔다고 믿었던 햇살은 매번 움켜진 내 손을 벗어나 손 등을 따뜻하게 덥히고 있지 않은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손을 열고 있는 한에서만 햇살은 내 손 안에 머물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열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짐이 없다. 열기 위해서는 먼저 버려야 한다.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버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버려야 담아 둘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얼마 전 컴퓨터가 느려져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컴퓨터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도 안 쓰는 파일이나 불필요한 파일들을 자주 버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소위 ‘싹쓸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다운 받아서 그 후로 자주 사용한다. 비우고 버려야 가질 수 있다는 진리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 내 사물의 본바탕 이치가 결국은 같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버림의 정신’이란 단지 수도승들만의 모토가 아니다. 버리지 못하면 새 것을 얻기란 불가하다. 왜냐하면 새 것은 결국 버림을 통해서만 획득되기 때문이다.
인류 모두가 함께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인간 공통의 질병이 있다면 이는 분명히 ‘이기주의’와 ‘지배주의’일 것이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집단적인 이기주의와 지배주의의 폐해가 더욱 첨예화되었다. 우리 손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권력으로 변질되고, 독점과 지배욕의 희생물이 되어 버리니 말이다. 나, 너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열고, 비우고, 버리는 일에 더 힘써 보자. 흔히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 진다고들 말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세월이 가르친 덕분이리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