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식 육계장
우리 음식 중에 얼큰하고 감칠맛 나는 탕(湯)중에 육개장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이 육개장을 육장(肉醬)이라 한문 표기하고 ‘쇠고기를 축 삶아 결대로 찢어 고춧가루, 파 마늘, 간장 기름, 후춧가루로 양념하여 끓여 낸 국’이라고 하였다.
육개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육개장이라는 단어를 육과 개장으로 나눠 볼 수 있다.우선 우리는 육=고기(肉)하면 쇠고기를 말한다. 개장은 개(狗)와 장(醬)을 말한다.즉 개장국을 말한다.요즘 보신탕, 사철탕이라 부르고 북한에서는 단고기국이라 부르는 개장국(狗醬)은 예로부터 우리민족이 삼복에 즐겨 먹던 음식 중에 하나다.
이 개장국에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어 끓이는 게 다를 뿐 구장을 끓이는 법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닭고기를 넣으면 닭개장이 된다.
삼복더위에 개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태생된 음식이 바로 육개장과 닭개장이다. 이 육개장에 대해 1940년 손 정규(孫 貞圭)가 쓴 [조선요리(朝鮮料理)]나 1939년 조 자호(趙 慈鎬)가 쓴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에 만들기가 소개되어 있다.
“양지머리와 사태를 쇠양 등과 함께 축 삶아 건져내고 국물을 식혀서 기름을 걷어 낸다.건져낸 고기는 결대로 찢거나 칼로 썰고 양도 저민다.
이 고기나 양을 진간장, 다진 파와 마늘, 참기름, 깨소금,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한다.한편 고춧가루에 참기름을 끓여 넣어서 잘 개어 놓고 대파를 데쳐 놓는다. 이들을 끓어오르는 장국에 넣어 한 소큼 끓여 낸다.” 이것이 서울식 육개장이다.이 육개장이 대구식으로 변해 대구탕이 되었는데. 1869년에 쓰여 진 연대(延大)[규곤요람] 육개장에는 “고기를 썰어서 장을 풀어 물을 많이 붓고 끓이되 썰어 넣은 고기점이 푹 익어 풀리도
록 끓인다. 종지 파잎을 썰지 않고 그대로 넣고 기름 치고 후춧가루를 넣는다. ”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곤요람]은 육개장보다 대구탕(大邱湯)에 가깝다.
대구탕은 서울식 육개장과 비슷하지만 고기를 찢어서 넣는 게 아니라 덩어리 고기를 넣는다.
아마 연세대 [규곤요람]의 육개장이 변형되어 대구탕이 된 것 같다.
대구는 다른 지방에 비해 지형적으로 분지형태로 되어 한 여름이 되면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푹푹 찌는 날씨를 견뎌내기 위해 삼복에 개장국을 즐겨 먹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대표적 음식 개장국(狗醬)조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변형되어 태생된 음식이 바로 대구식 육개장이며 이를 다른 이름으로 대구탕이라 부른다.
대구탕에는 파, 부추, 마늘등을 엄청나게 많이 넣는다.이 재료 모두 냄새가 진하다. 이 냄새 성분이 유황화합물이다.이 유황화합물은 충분히 삶으면 냄새 성분의 일부는 휘발하고 감미성분(甘味成分)으로 변한다.
이것은 유황화합물이 프로필 메르카프탄(propyl mercaptane)으로 변하는데, 이것의 단맛은 설탕의 50~60배라고 한다.따라서 대구탕에는 매운맛 속에 단맛이 도는 독특한 맛을 낸다.대구에서 예전부터 유명했던 집은 해방 전 대구 약령시 뒷골목에 있던 청도식당의 육개장이 유명 했다.
경북 경주가 고향인 소설가 김 동리(金 東里)선생은 “따로국밥이라고 하면 누구나 오늘날 서울의 그것을 생각하게 되겠지만 내가 말하는 육개장은 그것이 아니다.우선 빚깔 부터 오늘날 그것처럼 시뻘겋지 않고 고기를 그렇게 가늘게 찢어서 놓는 법도 없지만, 재료부터 상당히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나도 물론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일종의 쇠고기 국인데, 풋고추와 부추(정구지)와 파를 엄청나게 많이 넣어서 끓인 것으로 생각된다.고기는 살코기인지 내장인지 뼈인지 어느것이 등심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풋고추. 부추.와 마늘 따위를 엄청나게 많이 넣어서 그것을 곤 물로서 절로 국물이 될 정도가 아니던가 생각된다.
하여간 이 음식은 특별한 것으로 내가 어릴때는 고향인 경주에서 가끔 먹을 수 있었고 그 뒤에는 대구나 부산서 두 번씩 먹어 본 기억이 있다”고 썼다. 언론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인 홍 승면(1927~1983)선생도 1976~83년 까지 쓴 [백미백상(百味百想)]에 보면 “육개장과 비슷했던 대구탕(大邱湯))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육개장
에 자리를 양보하고 은퇴 한 것인가. 지금 서울거리에는 ‘대구식 따로국밥이 퍼지고 있다.’ ”고 했다,
여기서 대구식 육개장->대구탕->따로국밥으로 이어진다.따로국밥은 1940년대 초 대구 포정동 중앙사거리 예전 나무꾼들이 나무를 파는 나무장(場)에 국밥집이 있었는데, 이 당시 이 국밥집들은 대구탕을 팔았다.당시 대구탕은 대구식 육개장을 가마솥에 끓여 뚝배기에 밥을 담아 끓는 대구탕 국물에 뜨끈하게 토렴하여 담아 주었는데, 손님들이 “밥을 국에 말지 말고 밥따로! 국따로! 달라”고 주문하므로 손님이 원하는 대로 밥과 국을 따로 내면서 ‘따로국밥’이 태생되었고, 이 따로 국밥이 서울 까지 상경하여 전국의 식도락가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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