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걸레 자루를 제대로 잡기 힘든 몸이지만 2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청소를 해온 양철승 씨.
정신지체 양철승 씨, 청소해 번돈으로 어머니 칠순상 차려
남은 소망 하나는 한국에 있는 아들 데려다 같이 사는것
정신지체아로 태어나 49년을 살아온 양철승씨, 지천명 나이를 바라보는 아들은 한 소망이 있었다. 칠순을 맞은 어머니 생일잔치를 자신이 번 돈으로 차려드리는 일, 청소일을 하여 2년간 모은 1,000달러로 1년전 어머니의 고희연을 열어 그 소망을 이루었다.그리고 다시 또 하나의 소망을 가졌다. 한국에 있는 아들을 뉴욕으로 데려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
그렇지만 그 일이 성사되기는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양씨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원래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양씨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다.
미국의 장애인에 대한 의무교육은 21세까지며 영주권이 없으면 21세 이후에는 메디케이드 혜택도 받을 수가 없다.
양씨는 장애인에 대한 정부지원도 못받는다. 다행히 뉴욕밀알선교단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한인사업체 몇 곳에서 시간당 최저 임금을 받으며 2005년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엔 장애인이 청소를 하면 깨끗하게 못한다고 탐탁해 하지 않는 곳도 있었지만 양씨는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해 현재 4곳의 한인 교회에서 일주일에 11시간씩 일하고 있다. 물론 양씨가 일하는 돈으로 생활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 권봉님씨가 양로원에서 일하고 퀸즈한인성당에서 보금자리를 살펴준다.
양철승씨가 미국에 온 것은 1991년 9월19일. 쌍둥이 동생과 함께 캐나다를 통해서 어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쌍둥이 동생은 양철승씨만 남겨둔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으며 양씨는 원치 않았던 이민 생활을 어머니와 함께 시작했다. 양씨는 과거 이야기를 꺼려한다. 말을 해도
알아듣기 힘들지만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살에서 부인과 동생 등에게서 자신이 버려졌다는 서글픈 감정의 골을 느낄 수 있다.
양씨는 “내가 청소를 하는 것은 운동도 되고 먹을 것도 사먹고, 방세 내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왕 미국에 온 거 열심히 살아서 아들하고 어머니하고 다같이 살고 싶어요”라고 더듬더듬 이야기 한다.
양씨에게는 신분, 보험 문제 등 꼭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다. 떨어져 사는 동안 어느덧 성인으로 훌쩍 커버린 25세 아들과 산다는 것은 막연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니겠지만 불편한 신체로 일하여 한푼 두푼 모은 1,000달러가 1,000만 달러, 그 이상의 값
어치를 지닌 칠순 잔치 상을 차린 것처럼 아들의 얼굴을 보게될 날도 기다린다.
어머니와 한국에 있는 아들이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힘을 얻는다는 양씨는 오늘도 열심히 그 꿈을 이루고자 성심성의껏 교회 바닥을 쓸고 닦는다. <김재현 기자> 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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