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의 눈이 녹아 실개천에는 수정 같은 물들이 넘쳐흐르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 위에 어느새 붉은 꽃이 피어 장관을 이룬다. 널려있는 검은 돌 자갈밭은 윤기를 내고 때로는 반짝인다.
박 대위는 쌍안경을 내렸다. 돌담 위에 놓인 전투 헬멧과 기대놓은 자동소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파괴자인가? 다소 불쾌한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 작전은 자기가 자원한 것이 아닌가.
방금 시동을 건 장갑차의 엔진소리가 그의 사고를 멈추게 했다. 그는 쌍안경을 다시 들고 아이들이 볼모로 잡혀있는 알카에다 작전지역을 다시 살폈다. 옹기종기 회색집들이 촌락을 이루고, 앞에는 불어난 수위로 강이 돼버린 개천이 흘러간다. 촌락 뒤에론 작은 농경지가 있고 뒤에는 흰 눈이 덮인 높은 산이 있다. 가히 천연적인 요새이다. 일주일전에 알카에다가 나토군 캐나다 부대를 격파한 곳이다. 수도 카불과 근접 중요도시를 잇는 요충지대여서 그들은 야만적이 수단을 써서 이 요충지대를 사수하고 있다. 낮에 아군이 접근 시에는 아이들로 하여금 꽃을 따게 하여서 아군의 공격을 막고, 밤에는 아군을 습격하여서 무수한 사상자를 내는 것이다.
박 대위는 6.25때 할아버지가 연습기를 타고 인민군의 일선 선봉대를 멈추게 한 무용담을 항상 마음에 담고 직업군인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무서워했던 탱크부대의 소대장으로 일차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그는 이번 작전에 탱크 사용을 상부에 건의했지만 여단 사령관은 무슨 이유인지 허락지 않았다.
그는 어른들의 전쟁에 무고한 아이들이 다쳐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굳게
지켰다. 포화 속에서 헤매는 아이들이 탱크 주변에 있으면 그는 아이들을 탱크 속에 감추어 안전지대 보호소에 맡기기까지 해서, 상부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기까지 했다. 그는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작전은 시작되었다. 102 공정대 2개 중대가 소리 없이 농경지에 낙하되었다. 작전에 없는 탱크 4대에 발동을 걸게 했다. 탱크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산울림이 되어 천지를 진동했다. 장갑차 6대로 10미터 간격으로 얕은 개천을 쏜살같이 건너서 꽃밭을 일렬횡대로 마을로 향해 진격하였다. 장갑차는 일제히 오전 4시 15분에 마을 돌담에 사격을 가했다. 공정대가 투하된 농경지를 대낮같이 밝히는 신호탄이 하늘높이 솟았다. 알카에다는 허둥지둥 산을 향하여 도주해갔다. 그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것이다. 아니면 아이들을 총탄막이로 삼을 지도 모를 것을 대비해서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왔다. 놀란 아이들이 아녀자와 함께 하나둘씩 집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꽃밭에 섰다.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이 붉은 꽃 속에 어울러졌다. 장갑차 속에 있던 소대원들이 총 대신 담요를 들고 아이들에게 갔다.
아이들이 따뜻한 담요와 소대원들의 품속에 안겼다. 박 대위는 철모와 고글을 벗었다. 따뜻한 눈물이 그의 뺨을 흘러 내렸다. 한 어린아이가 붉은 꽃을 꺾어들고 그의 품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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