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 하면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이 모든 조건을 갖추었는데도 미혼인 언니나 형이 앞에 있어 걱정하고 고민하는 표현을 ‘똥차가 밀려서 세단이 못 지나간다’고 우스개삼아 말할 때 흔히 쓰인다.
‘똥차’-. 우리 집에도 똥차가 하나 있다. 우리 집 똥차는 그런 것이 아니라 91년에 구입한 차가 10여 년을 훨씬 넘는 세월을 나와 함께 보내다 보니 헌 자동차가 되었기에 나는 그 차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나는 덜덜 거리는 그 똥차를 타고 남들은 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이른 새벽길을 힘차게 달려 날마다 일터로 향한다.
내가 똥차 똥차 하니까 주위에서는 왜 하필이면 그렇게 똥차라고 부르느냐고 한다. 내게는 이유가 있다. 요즘은 그런 일이 흔하지 않지만 그래도 좀 달 산다는 집에 귀하게 태어난 아들은 ‘돼지’라든가, 아니면 ‘개똥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아주 실없는 천한 이름을 붙여서 모든 이가 불러주면 명이 길고 무탈하게 자란다는 그런 속설에서 그랬던 것 같다. 내 똥차도 그와 같이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좀 더 길어졌으면 하는 바람에 열심히 “똥차”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내가 가는 곳마다 어디든지 함께 다니며 기쁠 때 함께 기뻐해주고 슬프고 속상할 때 함께 슬픔을 같이 해주었을 것 같은 정든 내 똥차를 나는 누가 뭐래도 아끼고 사랑한다.
집안 식구들은 어쩌다 내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기다리다 헌 자동차라 길에서 혹시 고장이라도 생겨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불안하다며 얼마 전 남편과 아이들이 의논해서 나도 모르게 새 차를 구입해주었다. 그러고는 헌 차는 처분하고 새 차를 타고 다니라고 하지만 말 못하고 생명이 없는 한갓 고철에 불과한 ‘똥차’이지만 내 손때가 묻고 생사고락(사고도 두 번 있었다)을 같이 한 그 ‘똥차’가 나는 새 차보다 훨씬 좋다.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하찮은 우리들의 물건도 정이 들면 이런 애틋한 마음이 드는데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우리 인간들을 얼마나 더 사랑하고 아껴주실까. 내 존재가 하느님 눈에 내가 ‘똥차’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듯 그렇게 보이고, 그래서 내게 늘 넘치는 사랑으로 나를 아껴주시겠지 하고 느낀다. 지금 이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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