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조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밤이면 밤마다 거리에서 끝없이 촛불을 태웠다. 어쩐 일일까. 나의 마음속에도 그 촛불이 탄다. 뜨겁다. 마음이 탄다. 틀림없이 분하고 슬프고 애통할 일이 있는 것이다.
존과 김 씨가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이웃들은 촛불을 들고 슬퍼했었다. 버지니아텍 참사 때도 사람들이 눈물을 닦으며 캠퍼스를 밝히는 촛불을 켜고 머리를 숙였다.
나에게 촛불의 기억이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지금 촛불은 이상하리만치 생경스럽다. 아니 거북하다. 포성이 가까이 들려왔던 그날 나는 친척의 등에 업혀서 관악산을 넘어갔다. 그리고 길고 긴 밤마다 촛불로 밤을 새웠다. 어린 눈으로는 촛불이 미웠다. 촛불과의 싸움은 중등학교까지 내내 계속되었다. 숙제하다 졸면 머리를 태웠다. 커튼에 불이 붙어 집을 태울 뻔도 했다. 재미있게 소설을 읽으며 촛불이 다 타버려서 안타깝기도 했다. 그리고는 촛불의 애환은 밝고 환한 전기불이 들어오면서 까맣게 잊혀져 갔다.
이제까지 낭만적인 촛불 아래의 저녁식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도, 가지각색의 모양과 냄새를 풍기는 촛불도 외면해왔다. 솔직히 촛불의 기억은 싫다. 불 꺼진 거리를 함성을 지르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면서 걷고 또 걸었던, 명동 성당 아래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서 정의와 자유를 위해 밤을 지새면서도 촛불을 켜지 아니했던 우리들.
매일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은 촛불데모로 나의 가슴속이 다시금 서서히 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손에 끌려 아이들이 촛불을 켰다고 했다. 치명적인 병을 유발할 지도 모른다는 미국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해서, 대중들은 미래의 국민 건강을 위해서, 정부가 자국민에게 불리한 미국과 협상을 했다는 항의로, 대통령의 부적절한 인사등용과 국민과의 소통이 절대 미흡함에 대한 항의로, 대통령의 교만함 때문에, 급기야는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촛불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청와대 안뜰에서 눈물을 흘리며 촛불의 행진을 바라봤다고 했다. 신문에 올리는 대통령의 사진이 자꾸만 작아져간다. 국가의 간성을 길러내는 학교 학생들이 뽑은 제일의 적이 미국이라는 풍문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조국을 사랑하는 미국시민인 나에게는 충격적이다. 병원 동료들이 새로 나온 현대차를 칭찬하거나, 자기의 삼성, 엘지 전자상품을 자랑할 때 으쓱했던 어깨가 이제 멀쑥해져버렸다. 미국인들이 저 촛불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자유와 가난 때문에 미국에 온 많은 동포 선배들이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며 12시간 7일을 일과 싸우며 아직도 그렇게 가보고 싶은 고향을 가지 못한 채 매일 매일 소중한 일에 매어있는 고령의 동포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가슴속마다 촛불이 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의 촛불도, 슬픔의 촛불도 아니다. 아주 성숙한 용서의 눈물. 그것이다. 가난한 이북 동포에 대한 가련한 마음과 자랑스러운 조국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다. 정직하고, 도덕적인 현명한 지도자를 키우는 나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인정 많은 국민, 국민의 복지를 위해 깨끗이 일하는 정부. 촛불대신 희망의 횃불을 들고 통일을 이루는 조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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