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더니…”
전화기 저편에서 엄마의 한숨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허리케인이 텍사스쪽을 강타했다는 뉴스가 연일 한국에서도 탑뉴스로 TV를 장식하는데, 매일 저녁 전화를 걸어도 늘 감감무소식인 딸네때문에 며칠 마음을 졸이신 모양이다. 캘리포니아에서 12년을 살고 있으면서, 이곳은 허리케인이랑은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건만, 여름철 허리케인에 관한 뉴스만 나오면, 늘 너흰 괜챦은 거냐며 전화를 하신다.
“딸부잣집 셋째딸은 선도 안보고 데려 간다는데….”로 시작되는 나의 레파토리에 남편은 늘 그 말은 최진사댁 이야기지 김씨 집안 이야기가 아니라며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하여튼 나는 그리 흔하지 않은 딸넷에 아들 하나, 딸부잣집 셋째딸이다.
오래전 혼자 되셔서 우리를 키우시면서, 엄마는 빨리 키워 시집주면 엄마 할 일 다 한거지…그러셨다.
그리고 딸들이 모두 시집을 간 지금…. “시집들만 보내면 다 끝날 줄 알았더니, 딸하나당 딸린식구들 둘씩, 혹들이 더 생겼구먼…” 엄마 말대로 이젠 정말 가지 많은 나무가 되어 버렸다.
하루에 한번씩 딸네들 안부 전화만 해도 하루 반나절이 가고, 이집 손주녀석 감기 다 낳았나 전화하고 나면 다른 손주녀석이 감기 시작했다 하고, 이 사위가 승진을 했노라 기뻐 전화하고 나면, 저 사위가 집 멀리 발령이 났다며 심난스러워 한단다. 딸 하나는 왜 그리 멀리 시집을 가서 사는지, 뉴스에 툭하면 나오는 “미국에서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신단다.
어려서부터 우리 자매들은 똘똘 뭉쳐서 무언가를 하는걸 좋아했었다. 쇼핑을 가도, 맛난걸 먹으러 가도, 밤새 수다를 떨어도, 그렇게 뭘해도 똘똘 뭉쳐 다녔다. 가끔 막내 여동생이 우리집딸들이 다 가지고 있는 가방이라며 이 먼 미국까지 조그마한 화장품 넣는 가방을 보내오기도 한다. 덕분에 미국으로 유학갈 날짜를 잡아놓고 치룬 나의 결혼식에서 친정 식구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그날 기념사진은 지금도 다시보기 민망할 정도다.
이제 적응할만도 한데, 아직도 명절이 되면 집안가득 시끌벅적 할 식구들과 그 분위기가 그리워 향수병이 생기곤 한다. 엊그제 추석을 보내며, 다들 모여 앉아 송편은 먹었냐며 전화를 했다. 난 사실 송편보다도 더 그리운게 있는데 말이다.
가끔은 내가 없는게 이젠 익숙해 져버린 것 같은 나의 언니, 동생들이 섭섭하기도 하지만, 나의 그리운 가족들… 그 많은 가지들이 하나하나 어울려 멋진 바람소리를 만들고, 편한 그늘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알고 있기에, 늘 염려 많으신 엄마에게 그래도 제일 큰 재산이 바로 그 많은 가지들이 아니냐고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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