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누가복음 10장 3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일행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마르다라고 하는 여인이 일행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였습니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주님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고 마르다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마르다는 종래 예수님 앞에 나와 “주님 제 동생이 모든 일을 저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데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좀 도와주라고 하십시오” 하자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대답 하시기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아니면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고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분의 대화를 분석해 보면 예수님이 이 집에 오신 목적은 좋은 음식을 대접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예수님이 식사를 하려고 오신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원래 목적과는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 목적을 정하고 자기 방식대로 섬기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섬기는 것이 가장 잘 섬기는 것이고 예수님도 기뻐하고 만족하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마리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왜 그렀습니까?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일치하는 섬김을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이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면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나름대로 목적을 따라가다 보니까 피곤해지고 남을 원망하고 비판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옳다고 하는데 마르다는 틀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르다는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잘못 됐다고 예수님까지 비판합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왜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도 열심히 했습니까? 거기에도 나름대로 기쁨이 있고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지금 주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최선(Best)이 아니라 차선(Better)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최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최선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를 보세요. 하나님의 목적(뜻)과 나의 목적(뜻)이 일치하면 최선입니다. 최선은 헌신의 정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 목적과 방법을 다 정해 놓고 하나님께는 이 일에 동의하고 협력하라고 떼를 쓰며 설득 합니다. 그러나 목적이 최선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하고 수고를 해도 최선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내 목적과 뜻을 맞추어야합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가장 잘 대접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던 음식을 접어둔 채 방으로 들어와서 마리아와 함께 말씀을 듣는 일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마르다의 집을 떠나기 전에 마르다가 준비한 음식을 잡수시고 떠나셨는지, 그리고 마르다의 수고와 요리 솜씨를 칭찬 하셨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을 기록한 본래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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