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 눈을 가까스로 뜨고 창밖을 내다보다 장독대에도 지붕위에도 밤새도록 소복히 쌓인 눈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마치 동화 속의 아름다운 공주가 된 양 가슴이 두근대곤 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의 눈 위에 먼저 이리저리 뛰며 발자국을 남기는 강아지도 나만큼 흥분된 마음인 것 같았다. 아직 오빠들도 일어나지 않았고 집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평소에는 엄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시느라 부엌 쪽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곤 했는데 눈이 내린 아침에는 이상하게도 소복이 쌓인 눈에 모든 소리도 눌린 양 고요하기만 했다. 한참 창밖의 눈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때 엄마가 빨개진 볼을 하시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손에 들려있던 빗자루를 내려놓으시며 머리에 얹힌 눈을 터셨다. 엄마는 이른 새벽부터 밖에 나가 길의 쌓인 눈을 쓸고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큰오빠부터 나까지 무려 5명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 가히 매일 아침은 전쟁터를 방불케 해 그 준비만으로도 바쁘신 데도 눈이 오시는 날이면 엄마는 더욱 더 일찍 일어나시어 눈을 치우고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우리 집은 골목안으로 한참을 들어와 있어 버스정류장까지 꽤 먼데 그곳까지 다 쓸고 들어오신 것도 상상이 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내리는 눈은 엄마의 빗자루가 지나간 그 길위에 엄마가 집에 돌아오시기도 전에 이미 눈이 또 수북이 쌓이기 때문에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볼과 코가 빨개지신 만큼 몸도 무척 추우실텐데 뭐 하러 고생을 하며 온 동네 눈을 쓸고 다니시나 하는 내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좀 과장된 표현으로 겨울이 6개월이라는 미네소타에서 4월까지 길에 쌓여있는 눈을 보며 엄마의 생각을 종종 하곤 했었다. 쓸고나면 바로 쌓이는 그 눈을 왜 그렇게 새벽부터 열심히 치우셨을까 하는 의문도 떠오르곤 했다. 그 후 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왔고 무엇보다도 날씨에 “감사”했다. 눈이 오면 늘 걷는 것이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했던 나에게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삶의 질을 좌우하는 조건이 되었다. 필요할 때는 한두 시간 거리에 스키를 탈 수도 있고 그것도 미네소타처럼 꽁꽁 동여매고 동장군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반바지를 입고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러자 바로 쓸어도 다시 쌓이는 눈과의 싸움을 하시던 엄마가 추구하시던 것은 결국 나에게 삶의 질을 높여 주시려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보다도 중요한 희생에 담긴 엄마의 마음을 알기까지 너무도 긴 시간이 걸렸고 이렇게 의문이 풀리기 전에 엄마는 돌아가셨다.
자녀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고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조건없이 주기만 하는 무한한 사랑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인 것이다. 장애자녀를 가진 부모의 마음은 그보다 좀 더 복잡하다. 자연스럽게 주게 되어있는 사랑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강요의 입장으로 바뀌고 자녀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말고를 떠나 결코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과 잠시도 쉴 수 없는 아니 영원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을 더욱 애절하게 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나마 조금 있지만 그 뒤에서 늘 노심초사하는 그들 부모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전혀없다. 이웃에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위해 하루라도 그 아동을 집으로 초대해 놀아주거나 교회를 다니는 경우 주일하루 장애아동을 대신 라이드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장애부모들이 리저널 센터나 한인사회의 여러 단체에서 마련하는 장애부모 모임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서로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애자녀를 키우시느라 노고가 많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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