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촌 김학수 화백은 평양에서 내려 올 때 두어달이면 족히 공산당이 물러나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온 가족이 오손도손 함께 모여 살 소망에 여늬 이산가족처럼 살았다. 평양에서 수암 김유택에게 배운 그림 재주를 밑천으로 스승 이당을 따라 도자기회사에서 그림도 그리며 근근한 살림을 꾸렸다. 그러나 두어달이면 족할 것으로 여겼던 이산의 아픔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몇 해, 새벽이면 교회에 나가 기도를 드리는 골방의 기도처소에 눈물이 쌓여갔다. 그 사이 혜촌은 전쟁 고아를 중심으로 피난 내려온 북녘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유엔군이 평양을 수복할 때 도피하던 공산당에 순교당한 이태석목사의 두 아들 승만과 승규 형제를 키웠다. 물경 40여명의 아이들을 내 자식인양 키우다보니 세월이 흘렀다. 북녘의 가족들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고 저들을 보살펴 주실 것을 믿는 마음 하나가 제단에서 드려지는 그의 기도 전부였다.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믿음을 지키면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의인의 가족을 진치고 보호하시겠노라”는 시편의 말씀을 믿고 의지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낙망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삼년이면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이켜 질 것으로 여겼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지 오래였다.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고 휴전선에서 작은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혜촌은 새가슴처럼 숨을 죽여야 했다. 7.4 공동 성명이 발표되자 남북이 자유롭게 통행 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기쁨이기에는 너무 벅찬 희망이었다. 희망과 절망의 늪을 들락거린 세월이 늘어만 갔다.
그럴 때마다 원산가는 길목이 내려다보이는 정선과 양구의 한강 줄기를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변하는 강산줄기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자그만치 40년, 화폭에 그리움처럼 쌓인 한강 그림이 어느덧 350 미터나 되었다. 3년전 그의 나이 88세에 세상에 내어놓은 ‘한강전도’다.
혜촌에게는 평생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화업 두가지가 있다. 한강전도가 하나이고 둘째는 1985년 필자가 주관했던 한국 기독교 전래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린 한국 기독교 역사화 66점과 예수 성화 33점이다. 이들 그림은 모두 기독교 순교 박물관과 연세대학에 수장되었다.
혜촌은 살아생전 수 많은 기독교 역사와 예수의 삶을 그림으로 그려 냈지만 한국 기독교 전래 100 주년을 기념하여 그린 그림 ‘예수탄생’은 단연 혜촌 성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비단에 아교를 칠하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미색의 중간톤으로 덧칠해 그린 그의 신앙고백이다. 무릇 작가가 평생에 많은 작품을 그린다해도 모든 작품이 명작일 수는 없지만 혜촌의 이 그림에는 밀레의 ‘만종’에서 느끼는 경건과 신에 대한 기도가 깊숙히 배어난다. 작가가 하나님과 관계해온 교감 신경이 오관을 자극하는 탓이다. 부인과 헤어진 아픔을 간직한 노화가에게 백두산 아랫동네 혜산에 살던 아내가 죽었다는 부음이 전해졌다. 55년동안 파리한 목숨을 그리움 하나로 지탱해왔던 혈류가 막히는 고통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뼈를 묻고자 했던 그리움이 40년의 각고로 그려온 한강전도와 예수 성화의 기쁨보다 더 진했던 모양이다.
한 순간 혜촌의 심장이 타들어갔다. 망백의 생일상을 받던날, 노화가는 이 땅의 모든 육신의 허물을 벗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채비를 했다. 모진 그리움을 화폭에 담아낸 지난 55년, 남남북녀로 살아온 혜촌내외가 지난 5월6일, 견우와 직녀처럼 만난 날이다. 비록 이 땅에서는 혜촌 김학수를 보낸 슬픔의 날이었지만 마치 그가 예수 오신 날 그린 천군천사의 나팔처럼 기쁜 축복속에 첫사랑으로 만나는 연인인양수줍음 속에 아내와 재회를 이룬 날이다. 부디 복되소서.두분
활짝 웃으소서…..천국에서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