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등학교 때 가장 많이 자원봉사를 하러 다닌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을 가기 위해 무조건 공부에만 목을 매야 한다는 주변의 말을 무시한 채 난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고아원이며 노동운동을 하는 언니들 숙소며 혼혈아동을 돕는 홀트 양자회를 드나들었다. 크게 팔 걷고 나서 뭘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능력도 없었기에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나 언니들과 어울리며 오히려 내가 세상을 배우러 다닌 것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에 뛰어들어 땀을 흘리는 그들 속에서 교복을 입은 채 쫓아다니던 나는 사는 환경이 다르다는 그 자체로도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것이 신기해 핀잔을 받아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피부색이 좀 다르다고 해서 같은 나이 또래의 혼혈아 친구들이 학교를 스스로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정말 같은 나라에서 함께 숨을 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온통 머리가 복잡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더 많은 시간을 홀트 양자회에서 운영하는 Boy’s Home에서 지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그 집으로 달려가 그들과 함께 이야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며 친구로 지내던 어느 날 그곳에 house parents로 미국인 부부가 이사를 들어왔다.
피부색에서 느껴지는 외적인 차이 외에는 생각과 언어와 문화에 있어서 100% 한국인인 혼혈아 아이들이 미국으로의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미국인 부부가 상주하여 살며 자신들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에 대한 이질감을 조금씩 줄여가고 미국의 문화와 언어를 자연스럽게 가르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외모로 좀 더 비슷한 그들보다 오히려 내가 더 그들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문화를 열심히 설명했고 혼혈아 친구들이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반항심을 갖게 됨으로써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갖게 된 사회적인 상황과 이유 등을 나름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들도 낯선 한국에서 살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가장 큰 어려움에 하나가 육아문제였다. 가사를 도와주는 한국인 아주머니가 낮에 그들의 어린 아들을 돌봐주시는데 훨씬 보호적이고 허용적으로 아이가 하는 대로 그대로 놓아두다 보니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하는 말도 아이가 무시하고 듣지 않고 아주머니와 저녁 때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어댄다는 것이 갈등의 핵심이었다. 아주머니는 어느 날 눈물을 흘리시며 자신은 친자식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있는데 미국인들이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아이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 말에 오히려 섭섭해 하셨다.
교육학 전공을 해도 가장 힘든 질문이다. 적절한 답이 없기도 하지만 그나마 실천을 하는 것은 더욱 더 힘든 일이다. 이것은 장애를 가진 자녀의 교육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바로 장애로 인한 상호의존성 때문이다. 비장애 자녀들은 부모에게 의존을 하다가도 나이가 들어 자신의 삶을 찾아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반해 장애자녀들은 독립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가정에서 그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는 방법은 부모가 세상에 없을 때 장애자녀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어려서부터 독립기능과 독립적인 생각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어도 (이것은 자녀의 능력부족보다는 안쓰러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말한다) 자꾸 혼자 해보도록 기회를 주고 선택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어 자립생활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다 보면 장애가 있더라도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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