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는 어찌 보면 한국 신도시에 위치한 교회들과 비슷한 면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합니다. 언제든 옮길 준비가 돼있고. 이런 성도들에게 목회자는 흠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귀감이 돼야죠.”
정성진 목사(55·일산광성교회·사진)는 솔직했다. 워싱턴 지역 한인 교역자들을 상대로 가진 세미나에서 정 목사는 속된 표현을 적절히(?) 써가며 본인의 감정을 과감히 드러냈다. 좌중을 웃기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목회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가면과 위선 보다는 투명하고 직선적인 마음의 교류가 필요하다 생각한 듯 했다.
“저는 무소유를 선언했습니다. 보너스도 없습니다. 28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데 작년에 5,000만원 이상 헌금했습니다.” 외부 집회 등을 통해 얻는 수입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회자는 당당해야 한다”는 신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자식들 과외 한 번 못시켰다. 한국적인 상황에서 참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두 딸은 연세대학교 의대와 정외과를 나왔다.
정 목사는 자신의 목회를 ‘깡다구 목회’로 표현했다.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산다. 이 말은 예장 통합 총회장을 역임한 고 임택진 목사가 해준 말인데 좌우명이 됐다. 골프도 안치고 차는 소나타로 만족이다. 굳이 성도들이 싫어할 일을 왜하느냐는 논리다. 누구를 만나면 밥값을 먼저 내고, 인사 잘하고, 남 도울 일 없나 찾아보고... 국민연금, 목사연금도 없다. 65세 은퇴는 이미 천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별화가 돼서 교회 소문이 좋아졌다. 1997년 창립 이래 출석 성도는 1만여명. 교인 많아서 좋겠다고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렇게 외부 집회 나오는 때가 휴가 기간이다. 이번 미주 집회 때도 일부러 집에 전화 한 번 안했다.
정 목사는 “교회의 크기나 성장에 집착하지 말고 옳고 그른 것에 초점을 맞추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왕 하는 것 목회답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한국 교회가 침체됐다고 하는데 제대로 하는 목회자가 나온다면 다시 개신교계가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성자요 수도사인 프랜시스는 혼자 중세 교회의 영성을 지킨 사람이다. 지금 개신교계가 회복해야 할 것은 이런 수도원적 영성이다.
젊은 전도사 시절, 그는 폐광촌에서 목회를 한 적도 있다. 엉터리 목회자들이 꼴보기 싫어 평생 전도사로 살겠다는 고집도 부렸다. 서울 장신대 재학 시절에는 맘에 안드는 총장 나가라고 일인 시위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빌자면 과거 그는 혈기 9단이었다. 이젠 달라졌다. 절대 성도와 싸우지 않는다. 교회를 안나오겠다는 한 성도를 한 달간 찾아가 끝내 화해한 경우도 있다. 교회는 철저하게 은혜와 사랑으로 비료를 삼아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거침없이 한마디 했다. “왜 꼭 결혼하려 합니까?” 온전히 헌신하고 주님을 위해 은사대로 최선의 삶을 살려면 가족이나 자식이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큰 교회 한답시고 자식들 조기 유학 보내고... 이건 완전히 ‘버터 영성’이다.
“세상과 교회가 가는 길이 같습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개척교회에 좋은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본받는 후배들이 있다면 영광입니다.” 정 목사가 가장 바라는 꿈은 바로 이것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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